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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항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5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구판장 규모의 슈퍼마켓과 허름한 여관은 수학여행 때나 봤을 법한 규모다. 중화요리집은 60·70년대 그대로의 모습이고, 노래방은 과연 신곡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조악하다. 식당들은 하나같이 따로 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정집 대문에 간판을 달아놓아 언뜻 보면 장사하는 곳 같지 않다. 나재필 기자 |
봄바람이 났다. 득달같이 달리는 속도의 세상에서 벗어나 딱 하루만이라도 조금은 느리게 가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는 여유를 갖고 싶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배반하고 속도를 거스르는 여행, 바로 느린 여행(slow travel)이다. 이 느린 여행은 그림자와 함께 걷는 시속 3㎞의 '불편한 여행'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차에서 내리지 않고서는 볼 수 없으니 그렇고, 길에 내려서서 사람과 내음을 직접 접촉해야하니 그렇다. 풍경은 빨리 지나치는 자에게 표정을 내어주지 않는 법이다. 장항이라는 동네는 시간이 멈춰있어 흑백필름의 낡은 피사체 같다. 마치 유년의 기억 한쪽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정거장처럼.
장항은 관광도시로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서해의 한 모퉁이, 충청도 서남단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읍 정도로만 알고 있다. 철새의 보고 금강하굿둑과 영화 JSA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밭,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마량포구와 동백나무숲, 춘장대 해수욕장이 있다는 것은 간과한다. 한울타리에서 동락하고 있는 서천의 한산모시와 소곡주에 묻혀버렸다는 인상도 받게 된다. 그러나 장항은 다른 유명관광지와는 달리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고유한 향리 모습들이 잘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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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장항사람들 3할을 먹고 살게 만들었던 옛 장항제련소의 모습. 120m 바위산에 90m 높이로 건립됐다. |
장항읍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북 군산시와 도계를 이루고 있는 인구 1만 4000여명의 도·농 복합지역이다. 읍이란 자고로 인구 2만 명이상이 되어야하지만 지방자치법에 의거 '군 사무소 소재지의 면에 해당'돼 읍의 명맥을 지키고 있다. 1939년 읍 승격이 됐으니 역사는 72년에 이른다.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뤄 쌀·보리, 채소 등의 농사가 가능하나 그리 활발하지 못하고, 어로 및 천일제염이 성하다. 본래 한촌이었는데 1931년 장항선이 개통돼 충남 서북부 지방의 탄토항(화물출입이 많은 큰 항구)이 됐고, 1936년 남한 유일의 건식제련소인 장항제련소(현 LS메탈)가 건설되면서 유명해졌다. 장항제련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굴뚝인데 해발 120m 바위산에 90m 높이로 건립됐다. 현재 이 굴뚝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 역사가 말해주듯 현존하는 지명 또한 정겹고 살갑다. 산이 빗겨져 있다 해서 비그매, 부자가 떠나지 않은 마을이라서 살리라 부른다. 성줏골, 원두골, 정자말, 가정멀, 당매, 대추말, 구렁말, 모금외, 방죽굴, 세멀, 원모루, 무네미, 까지멀, 당크매, 성박기, 질구지, 양철뜸, 용수멀 등 하나같이 토속적이다. 1929년부터 갈대밭을 개척해 만든 창선동은 지금 장항의 중심부로 나의 외갓집이기도 하다. 어릴 적 이곳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개울에서 참게 잡던 생각이 40년 세월을 뛰어넘어 아련하다. 어머니의 유년과 자식의 현재가 겹쳐 사련이 탄다.
장항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5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직도 일제시대 건물을 상당수 볼 수 있는데 현대식 간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야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구판장 규모의 슈퍼마켓은 결코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다. 그 옛날 아버지들이 구판장에 가서 노동의 피로를 달래며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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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아닌 전통 다방은 당장이라도 LP음반과 턴테이블에서 추억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다방안에선 감미로운 목소리의 DJ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턴테이블에 판을 걸고 '멘트'를 날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귀, 감초 냄새 풍기는 서너 평 남짓의 한약방과 도시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아주 작은 약방이 '길거리의 감초'처럼 남아있다. 여관과 중화요리집은 60·70년대 그대로의 모습이고, 노래방은 과연 신곡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조악하다. 식당들은 하나같이 따로 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정집 대문에 간판을 달아놓아 언뜻 보면 장사하는 곳 같지 않다. 건물들 대부분도 2층이다. 마치 고도를 잃어버린 양 마천루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개들도 팔자 좋게 늘어져 봄을 즐기고 있다.
사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보면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게 된다. 아니, 익숙한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오래된 도시, 오래된 풍경이 사람이 늙어가는 속도보다도 느리다. 골목에 접어들면 마치 유년의 추억이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코흘리개들이 하드를 사먹기 위해 비료포대나 보습 깨진 것, 고철덩이를 들고 나올듯하고, 유년의 고샅을 점령했던 땅따먹기, 말타기, 고무줄, 자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 오자미 판이 당장이라도 벌어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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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자체가 마치 소품처럼, 드라마세트장처럼 살갑다. 늙었으나 늙지 않고 잠자는 마을, 아직도 소꿉장난처럼 아기자기한 마을. 길 하나 물어봐도 만사 제쳐놓고 느긋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들. 세상은 2012년을 향해 달려가는데 1970년대에 머물러 있으니 세상의 밖에서 속도의 시대를 비웃고 있는듯하다. 동행한 정진영 기자는 동네를 둘러보고는 '갤러그(70·80년대 전자오락게임) 같은 곳'이라 했다. 이형규 기자 또한 '천천히 다닐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동네'라고 했다. 실핏줄처럼 잔잔히 흐르는 동네의 숨은 4㎞는 가히 흑백필름 영사기를 돌리듯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장항에서 군산까지는 배로 8분이면 건너지만 그 80년 뱃길은 금강하굿둑이 생겨 쇠락했다. '아날로그 철길'의 대명사 장항선도 이제 종착역의 이름을 떼고 읍내서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장항선: 천안~장항까지 총연장 143㎞ 구간에 29개 역) 황량한 벌판 위에 역사(驛舍)만 홀로 서 있어 살풍경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몇 발짝 움직이면 역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이제 택시를 이용해야만 하니 그 '빠름의 변모'가 다소 씁쓸해진다.
최근 장항은 '주식회사 장항'을 선포하고 옛 명성 회복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중법적인 잣대가 어쩔지는 몰라도 아날로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행복하게 전진했으면 한다. 장항의 '느림'과 아날로그 풍경들이 기억속에 오래 갈 것 같다.
장항=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서천=노왕철 기자 no8500@cctoday.co.kr
◆서천(장항)의 8경 △제1경 마량리동백숲과 일출(서천군 서면 마량리) △제2경 금강하굿둑과 철새도래지(마서면 도삼리) △제3경 한산모시마을(한산면 지현리) △제4경 신성리갈대밭(한산면 신성리) △제5경 춘장대해수욕장(서면 도둔리) △제6경 문헌서원(기산면 영모리) △제7경 희리산 자연휴양림(종천면 산천리) △제8경 천방산 풍광(문산면 신농리) ◆서천(장항의 축제) △한산모시문화제 : 매년 6월, 한산면 지현리 일대 △홍원항 전어축제 : 매년 10월, 서면 홍원항 △세계철새축제 : 매년 11월, 금강철새조망대 및 금강호 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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