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대전중앙청과 경매사 김용보 씨가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
|
|
지난 16일 새벽 5시 대전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도매시장은 경매에 참여하는 상인들로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띈다. 더욱이 추석이 얼마남지 않아 도매시장은 생기에 차 있다. 산처럼 쌓인 과일상자들과 상품의 상태를 확인하는 상인들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한사람, 모든 이들이 목 빠지게 쳐다보는 사람은 바로 경매사다.
그 중 가장 큰 목소리로 활기차게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 김용보(41) 씨가 있다.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입으로는 흥을 돋구며 눈으로는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경매가를 확인한다.
순식간에 경매가 진행되고 낙찰 받은 이의 웃음도 실패한 이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지만 이내 흥겨워 진다.도매시장은 경매로 시작해서 경매로 끝난다.
◆시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에 반하다
김씨가 시장에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4시.
경매에 앞서 그날 경매에 붙쳐지는 농산물의 상태를 확인한다.
16년차의 베테랑 경매사인 김씨는 이제는 과일의 겉모습만 봐도 그 과일이 얼마나 신선한지, 얼마나 맛있을지 훤히 다 보인다고 한다.
특히 수박과 밀감에 있어서는 만져볼 필요도 없다.
어떤 수박을 보더라도 껍질 속에 숨겨진 수박의 당도와 가격, 원산지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김씨는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과일만 보고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경매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은 숨길 수 없다.
처음 김씨가 잘나가던 페인트 영업 사원에서 도매시장의 경매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다.
여기저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영업 실적이 좋았고 따라서 연봉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친구를 따라 친구 아버지가 일하는 시장에 처음 갔을 때,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에 반해버렸다.
그 순간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고 느낀 김씨는 뒤도 안돌아 보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
경매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의 중앙청과에 입사했다.
운이 좋게도 처음부터 경매사로서 일할 수 있었지만 험한 시장에서 버텨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김씨가 경매대에 올라갔을 때, 시장의 중도매인들은 신입인 김씨를 골탕 먹일 요량으로 1만 원 짜리 과일은 5000원에 불렀다. 신입이었지만 화끈한 성격이었던 김씨는 확성기를 집어던지며 경매를 취소했다.
그날 밤 시장 내 포장마차로 중도매인들을 한명씩 불러 “젊은 사람이 어렵게 이 일을 시작했으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술을 먹였다.
그 다음날 낙찰가는 7000원.
김씨는 경매를 또 취소하고 중도매인들을 다시 포장마차로 불렀다.
결국 최종 낙찰가는 9000원이었고 그 뒤로 김씨는 일주일에 6번 술을 먹는 생활을 시작했다.
◆‘정’을 나누다
경매사는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다.
생산자(농민)와 상인(중도매인)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에서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농민들과 중도매인들에게 욕을 먹기 십상이다.
농민들은 제값을 받아 주지 못했다고 욕하고 중도매인들은 너무 비싸게 팔았다고 욕한다.
김씨는 형제 중 막내지만 머리가 가장 하얗다며 경매사로서 가장 속상한 것은 최대한 양측 입장을 고려했는데도 사기꾼 취급을 당할 때라고 말한다.
또 일반인과 다른 생활패턴을 갖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고 친구들과도 멀어진다.
김씨가 야채 경매를 담당했을 때는 밤 12시에 출근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빠를 낯설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장 사람들은 김씨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됐다.
경매사에게 산지 관리와 중도매인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좋은 산지를 유치해야 중도매인들에게 좋은 농산물을 팔 수 있고 또 구매해 주는 중도매인들이 있어야 상품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농가에서 소득이 생긴다.
김씨는 산지와 중도매인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매사가 중간에서 얼마나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따라 도매시장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경매사는 도매시장의 ‘꽃’으로 통한다.
이것이 김씨가 지방간, 고지혈증과 싸우면서도 농민, 중도매인들과 매일 같이 술을 먹는 이유다.
◆제값 받아주는 경매사로
애플망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서울 가락시장에서 애플망고 한상자(4개)가 34만 원에 팔렸다.
애플망고 한 개에 8만 5000원짜리인 셈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정도로 서울에서는 인기가 높았다.
김씨는 대전에서도 애플망고를 팔기로 결심했다.
모두들 대전에서 34만 원짜리 애플망고를 팔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지만 김씨는 팔았다.
김씨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늘 새로운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김씨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바쁘게 산다.
하루에 평균 수면 시간이 3~4시간이라는 김씨는 의사가 잠을 더 자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김씨는 이른 새벽 경매와 산지 출장, 잦은 술자리에도 지칠 줄 모른다.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김씨는 농산물의 제값을 받아 농민들을 웃게 해주는 경매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김씨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대형유통업체와 산지간의 직거래가 결국 농민들에게 이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농민들이 손해 보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유통업체는 산지와 계약할 때 도매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계약 기준으로 삼는데 우수산지가 직거래를 늘일수록 도매시장 가격은 떨어지고 결국 농산물 가격은 더 떨어져 우수산지도 제값을 받기 어려워진다.
농사짓는 비용은 해마다 올라가는데 농산물 가격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면 결국 파산하는 것은 농가뿐이다.
김씨는 “이러한 비효율적인 유통구조의 심각성을 정부와 농민들이 인식해야 한다”며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매사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긍적적이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김씨는 사람이 자산이라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전민희기자 manajun@cctoday.co.kr
사진=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