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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부검의)은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는 일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법의학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핸드폰 폭발로 숨진 것으로 보도된 사건을 교통사고를 위장한 사건임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
지난 2007년 11월 28일 충북 청원의 채석장에서 34세의 한 남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의 사체를 최초 검안한 의사는 선행사인란에 핸드폰 폭발이라고 기재했고, 인터뷰를 통해 배터리 폭발로 갈비뼈가 골절됐으며, 폐부종이 발생해 심장이 직접적으로 손상 받은 것 같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AP 통신 등을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됐다. 당시 핸드폰 사용자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핸드폰 배터리 제작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그렇게 핸드폰 폭발로 한 남성이 채석장에서 숨진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남성의 사체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 법의학과 김성호(41) 과장은 핸드폰 폭발로 집중되던 이 사건을 교통사고 또는 안전사고로 의심하며, 경찰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이 남성의 사체 몸통 좌측면에서 직사각형 형태의 표피박탈(압박흔)을 발견했고, 이는 배터리 폭발보다는 강력한 둔력에 의한 정형손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재조사를 시작했고, 범인은 핸드폰 배터리가 아닌 최초신고자인 유압드릴 기사임이 밝혀졌다. 유압드릴 기사가 후진을 하다가 남성을 충격했고, 핸드폰 역시 그 충격에 의해 변형됐던 것이었다.
유압드릴 기사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석산에 올라가던 중 포크레인 옆에 남성이 쓰러져 있어 경찰에 신고했으며, 발견 당시 사망한 남성의 왼쪽주머니 안에 핸드폰 배터리가 녹아 달라붙어 있었다고 진술했던 것이었다. 한 남성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는 데, 김성호 법의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순간이다.
김 법의관은 "일반 병원 병리과의 업무란 내시경, 수술 후 조직에 대한 판별 등 수동적이고 단순해요. 반면 사망원인을 밝히려면 사망현장을 확인하고, 목격자 증언, 혈액화학 검사, 부검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능동적인 측면이 제가 다시 국과수를 찾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김성호 법의관은 지난 2001년 1년 동안 잠시 국과수 법의관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 을지대 병리과에서 근무하면서도 촉탁을 통해 부검업무를 계속 이어왔다.
김 법의관은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는 일이 병리과를 선택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 판단하고, 지난 2007년 8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 법의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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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 법의학과장은 “사망원인을 밝히려면 사망현장을 확인하고, 목격자 증언, 혈액화학검사, 부검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능동적인 측면이 법의관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
그러나 부검역시 신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김 법의관도 모든 사인을 밝힐 수는 없다.
외국의 통계에 따르면 부검으로 밝힐 수 있는 사인은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령 감전 중 저압에 의한 사망자가 있다. 저압은 고압과는 달리 화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목격자가 있을 경우 감전사라는 소견이 나올 수 있지만 목격자가 없다면 이는 '무소견부검'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요즘 법의학과 관련한 미국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시체를 보면 느낌이 온다는데, 사실 그런 건 없어요. 부검이란 가장 객관적인 사실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데, 개인의 사견이 들어갈 수 없지요. 따라서 부검을 앞두고는 최대한 마음가짐과 행동을 경건하게 하려고 해요."
김 법의관을 포함해 사체의 부검을 통해 사인을 찾는 법의관이 전국적으로 18명 있으며, 촉탁을 받아 부검에 참가하고 있는 교수와 사설 법의학 연구소 박사 등도 40명 정도 된다. 결국 60여 명 정도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망사고 중 형사소송법 제222조 1항에 따라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부검하고 있는 것.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은 곧 업무과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 법의관이 지난해 부검한 시신만 327건. 사체 부검이 많은 날 4~5건은 기본이고, 7건을 한 적도 있다.
"법의관이 하는 일은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있어요. 하루에 2~3건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김 법의관은 2008년 5월 부검결과가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경고하며, 인력난 해결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 법의관은 이 보고서에서 "법의학에 대한 적절한 훈련을 받은 의사가 충북 청원군 채석장 변사사건의 초기 단계부터 검시를 했다면 배터리 폭발에 의한 사망 사고로 언론에 부풀려져 사회적 혼란을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법의관은 이어 "우리나라는 검시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크고 작은 잘못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충분한 자격을 가진 검시전문가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검. 어찌 보면 평범한 소시민과는 별개의 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낳고 죽는 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 그 누가 축복을 받고 태어나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건 김 법의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말없이 죽은 자의 억울함 앞에, 실낱같은 사실이 그 억울함을 풀 수도 있기에 경건한 마음으로 사체 앞에 서는 것이다.
유창림 기자 yoo772001@cctoday.co.kr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는?
중부권 최첨단 과학수사의 메카이자 수 많은 망자(亡者)의 진실을 밝혀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사진 CI) 중부분소는 지난 2000년 9월 개소했다.
국과수 중부분소는 지난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되면서 감정업무의 효율적인 운영과 엄정한 성과관리로 중부권 최고의 감정기관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특히 국과수 중부분소의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감정은 국과수 전체 분소 중 단연 선두권을 달리고 있으며, 감정 의뢰건수가 매년 급증하는 추세에 발맞춰 처리건수도 크게 향상됐다.
지난 2006년 법의학, 유전자분석, 약독 등 전체 2만 5016건을 감정 처리한 국과수 중부분소는 2007년 2만 6018건, 지난해 3만 1179건으로 전년대비 19% 이상 증가한 감정의뢰를 처리했다.
감정처리 속도도 크게 향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과수 본소를 포함한 전국 각 분소 및 연구소의 감정지연율을 살펴보면 국과수 중부분소가 4%로 최저점을 보인 반면 본소를 포함해 남부·서부·동부 등 본·분소·연구소의 평균 지연율은 10.8%로 중부본소에 비해 6.8%p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밀 부검은 물론 유전자분석, 독극물·약물 분석, 화재·폭발·안전사고 등 이공학적 원인규명 등을 통해 각종 살인·방화·실종·성범죄사건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 신속·정확한 감정지원으로 증거위주의 과학적 수사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한편 서중석 초대 분소장을 시작으로 지난 2000년 개소한 국과수 중부분소는 권일훈 2대 분소장을 이어 현재 최영식 3대 분소장을 주축으로 3과 5담당이 근무하고 있으며, 대전과 충남·북, 경기·전북·경북·경남 일부 등 3개 지방경찰청, 41개 경찰서를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다. 유창림 기자 yoo77200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