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신임 회장 선출을 둘러싼 논란이 충북도와 적십자사간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회장선출 절차에 중대한 문제가 없는데도, 충북도가 절차상 하자를 문제삼아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당선자에 대한 인준에 발목을 잡으며 ‘선출 무효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되레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
◆충북도, 선출무효화 시도
이시종 지사가 추천한 남기창 전 청주대 교수가 지난 9일 열린 신임 충북적십자사 회장 선거에서 낙마하자 충북도는 초비상이 걸렸다. 남 전 교수는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이 지사의 선거캠프에서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직후에는 인수기구로 구성한 '민선 5기 충북도정 기획단장'을 맡은 인물이다.
선거 전 성영용 전 충북도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충북도의 남 전 교수 추천 사실을 인지하고도 회장선거 출마의사를 밝혔지만, 도는 사전정지 작업을 통한 교통정리를 하지 않는 등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꼴’이 됐다.
도지사의 권한과 위상이 크게 실추된 상황을 직시한 충북도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박경국 도 행정부지사가 지난주 적십자사 본사를 직접 방문, 고시동기인 고경석 사무총장을 만나 신임 회장 선출 절차를 문제 삼았다.
박 부지사는 "신임 회장 선출 때 추천 인사가 출석하지 않았고, 성 전 위원장만 정견을 발표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됐다"며 불공정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부지사는 성 회장 당선자가 상임위원 자격으로 자신에게 투표권을 행사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적십자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김경용 도 행정국장도 지난 14일 충북적십자사 A상임위원을 찾아가 선출절차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여부 등을 논의했다. 김 국장은 “(성 당선자의) 회장선출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조언을 얻기 위해 A 상임위원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국장이 선출무효화 방안 등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적십자사 “절차상 하자 없다”
박경국 부지사의 ‘불공정한 선출절차’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본보가 회장선출권이 있는 충북적십자사 상임위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상임위 회의 개최 전날 남 전 교수에게 정견발표를 요청했으나 ‘충북도의 의중을 확인한 후 결정하겠다’‘도가 참석하지 말라했다’”며 스스로 거절하고 참석하지 않았다.
한 상임위원은 “남 전 교수가 정견발표 요청을 스스로 거부한 것인데, 충북도가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결국 충북도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는 등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선출무효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적십자사 관계자도 “회의 전날 남 전 교수에게 정견발표를 요청했지만, 그는 ‘충북도에서 정견발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며 거절한 채 불참한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다른 상임위원들이 매우 언짢아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남 전 교수의 정견발표 거절과 회의 불참이 상임위원들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소위 ‘반란’의 단초가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함께 성 당선자가 자신에게 투표를 한 점도 회장 후보로 나선 상임위원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적십자사 정관에 없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충북도가 명분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선출무효화를 시도하는 배경에는 이시종 지사의 ‘측근인사 불발’이 짙게 깔려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비판여론 비등
충북도의 ‘발목잡기’ 탓에 충북적십자사 신임 회장에 대한 인준이 늦어지면서 성 당선자의 고향인 제천지역 회원들과 시민이 발끈하고 나섰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당선됐는데도, 이 지사가 입김을 넣어 ‘절차상 하자’ 논란으로 몰아가면서 인준을 미루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십자사 제천지구협의회(이하 제천협의회)는 21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성 당선자의 조속한 인준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채택, 대한적십자 총재에게 전달했다. 협의회는 서한문을 통해 “남기창 전 교수가 정견 발표 요청을 스스로 거절하고 참석하지 않아 충북도의 선출과정 불공정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적십자사 총재는 성 신임 회장에 대한 조속한 인준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또 “성 당선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가 이뤄진다면 500여 명 봉사회원은 물론, 시민 단체와 연대해 맞설 방침”이라고 경고했다. 제천 출신 첫 회장 탄생을 기뻐했던 대다수 시민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시민은 “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승리한 당선자가 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당선과 무효가 왔다갔다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엄연히 제천시민을 우롱하고, 나아가 제천을 홀대하는 처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 다른 시민은 “이 지사의 정치적 욕심 탓에 적십자사의 순수한 봉사 정신이 훼손됐을 뿐 아니라, 제천지역 봉사회원의 사기 저하와 시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
김용언 기자 whenikiss@cctoday.co.kr
제천=이대현 기자 lgija200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