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7일이 개봉일 이었으니, 조금 있으면 한 달이 되지만 ‘포뇨’의 위력은 여전하다.
이미 개봉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주제가는 길거리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핸드폰 벨소리 다운로드 횟수 역시도 상당한 모양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것일까?
물론 일본에서의 '포뇨'에 대한 열광도 무척 크다.
일본과 한국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간단한 이유만으로 이러한 열광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하야오 판 '인어공주'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바다 속의 물고기 소녀 포뇨는 바다생활이 따분하다.
아빠 몰래 외출을 나온 포뇨는 바다 속을 청소하던 그물에 휩쓸려 유리병에 갇히게 되고, 해변에 놀러 나온 소스케는 이런 포뇨를 발견하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곧 아빠 후지모토에게 끌려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되어 소스케와 지내고 싶은 포뇨는 동생들의 도움으로 거대한 파도와 함께 다시 소스케에게 향한다.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디즈니의 ‘인어공주’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선악의 대결이 아닌, 선들의 집합이라는 점이다.
포뇨와 대립의 각을 세우는 아빠도 실은 포뇨의 편이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들 한편인 것이다.
그동안 하야오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사연들'이 이번에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 듯하다.
멍청한 듯 보이지만 사연 많은 '토토로'의 심드렁한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서러움이 있었는데, '포뇨'의 선한 눈빛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엿보인다.
물론 더욱 어린 관객들을 설득하겠다는 노장 감독의 공언대로 눈높이를 아이들의 눈에 맞춘 이번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스토리는 대단히 단순하고, 그림은 대담하게 단순화되었다.
지브리의 무섭도록 냉장한 실력파 애니메이터들이 아이들의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를 맞춘 그들의 실력이 대단하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모든 기술과 감성을 총동원, 아이들의 감성을 아낌없이 자극한다.
여전히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하야오의 위력은 누가 뭐라 해도, 스토리 라인 이면의 감성적인 측면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혹은 전쟁에 대한 반대의 감성을 기본으로 하는 하야오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그가 만드는 영화들의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물론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야오 영화들의 캐릭터가 마냥 귀엽기만 할 수는 없다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혹시 초등학교 저학년 자제를 두신 분들이시라면 관람해볼 것을 권해보고 싶다.
지인의 귀여운 여식인 유치원생은 영화를 본 이후부터 자기의 이름이 포뇨라고 주장한다.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 즐거움을 같이 느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