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최민호 소청심사위원장은 “현재 지역민의 느끼고 있는 심정과 지역환경.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내가 충청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면, 충청인의 기질을 이어받아서가 아니고 충청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최근 ‘아웃터넷’(따뜻한 손)이란 소설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는 대전 출신 최민호 소청심사위원장을 만났다. 소설가로 등단했다는 평가에 대해 최 위원장은 ‘소설을 썼지만 소설가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본업인 공직에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정통관료 출신(행정고시)인 최 위원장은 독학으로 피아노, 색소폰을 뒤늦게 배우고 지인들에게 소설책 선물을 즐겨하며 연극 후원활동도 펴는 ‘문화인’으로 유명하다. 충남도 행정부지사 시절인 2007년 봄 도청 내에서 열린 미니콘서트에서 ‘꽃밭에서’와 ‘광화문 연가’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던 최 위원장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최 위원장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과 허구의 ‘섞임’에 주목했다. 태백산맥의 소설가 조정래가 역사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광목같은’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 데 최 위원장에게 소설은 팩트와 픽션의 교묘한 섞임이 아닐런지. 소설 이야기만 물어보기에는 최 위원장의 비중과 위치가 중요하고 높아 향후 행보 등에 대해서도 ‘상상력’을 동원해 ‘우문’(愚問)을 날렸는 데 ‘창조적 답변’인 현답(賢答)이 되돌아왔다. 최 위원장은 행정에도 창조성이 절실하고 국민들이 공무원들에 대한 ‘부패의 추억’으로부터 벗어나 달라고 이야기했다. 충청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애정 듬뿍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 공직에 있으면서 장편소설 ‘아웃터넷’을 창작했는 데 계기가 있었나. 발간 배경은.
“현직 공직자가 소설을 낸다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결심이었다. 우리 사회의 관념상 '딴 길을 파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소설을 냈다 하여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보다 전문화되고 지식기반적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소설은 소설가만이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더 구시대적이라 생각된다. 공직자라 (오히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것을 이러한 소설로 말하고 싶었고, 그래서 스스로 경험한 안면도 꽃박람회와 녹색성장에 관한 팩트와 소설적 픽션을 엮어 보았던 것이다.”
- 반응은 어떤가. 발간이후 소감은.
“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은 세 번 놀랐다고 한다. 첫 번째는 현직 고위공직자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놀랐고 두 번째는 책에서 전하는 수많은 전문지식의 방대함에 놀랐다고 했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소설을 내고 난 지금 마음이 개운한 것은 아니다. 작품이란 늘 미완성이므로… 하지만, 한 선을 그었다는 느낌에 안도는 된다.”
- 향후 집필계획소 또 있는지.
“공직에 충실한다는 생각이 소설을 썼다 하여 변하는 것은 없다. 여건과 역량이 허락한다면 또 책을 못 쓸 바 없지만, 공직이 우선이다. 사회 속에 뛰어들어 진지하게 세상을 살고 싶다. 그래서 공직자로서도 가끔 글을 쓰고자 한다. 그 글은 당연히 사회의 현실에 관한 것이고, 독자들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좋겠다.”
- 아웃터넷이란 책 제목 자체도 생소하고 책 내용도 전문적이어서 상당히 준비기간이 길었을 것 같은 데.
“아웃터넷은 내가 만든 신조어다. 놀라운 것은 내가 처음 만든 줄 알았는 데, 도메인 등록을 하다 보니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조어다 보니, 쓰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아웃터넷은 말하자면 인터넷의 확장개념이다. 인터넷은 인간끼리의 소통망이다. 나는 자연과의 소통망을 구축하고 싶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생각을 듣고 싶었다.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채널, 그것이 소설 속의 아웃터넷이다. 아웃터넷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미국에서 연수를 할 때였다. 꽤 오랜 기간 썼으리라고 짐작하는 사람이 많은 데, 사실 쓰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린 것은 아니다.”
- 대전 출신으로 지방, 중앙 행정을 모두 경험했고 특히 충남도에서 행정부지사까지 역임했는데 ‘충청인 최민호’를 정의한다면.
“공교롭게도 중앙과 지방의 사무관 이상 거의 모든 계층의 직위를 담당했다. 시·군의 실·과장(온양시), 도의 계장, 담당관, 국장, 실장, 부지사, 중앙의 계장, 과장, 국장, 실장, 그리고 차관급인 현재의 직위에 이르기까지 직업공무원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행정계층의 직위를 겪었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의 행정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지만, 충남도에서 배운 행정경험은 나의 인생의 굴절,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IMF를 촉발시켰던 당진의 한보철강 부도사태 시 경제국장으로 현장수습에 고심했던 기억,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실무책임자, 그리고 태안 기름유출 사태 시 부지사로서 현장지휘 등 가슴 속에서 숯덩어리가 타는 듯한 심정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니 고향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어찌 식을 수 있는가. 대전에 할머니 산소가 있고, 충남 천안에 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나에게는 대전이 충남이요, 충남이 대전이다.”
- 소설을 쓰면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상상력을 발휘해 앞으로 광역단체장, 특히 충청권 광역단체장이 된다면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행정가로서 상상력을 말한다면 그것은 정책의 구상력이 된다. 예술 분야에서만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생명처럼 말하는 ‘비전’에 미래에 대한 상상과 창의가 없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이라고 상상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말하라 하지만, 그 생각 자체를 떠나 시기적으로 그런 말을 언급한다는 것이 적절치 못해 사양하고자 함을 이해해 달라. 다만, 행정이라는 포괄적 의미에서, 고전적으로 행정은 법의 집행이라고 하는 18세기적 생각은 수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행정은 서비스’라고 하지만, 나는 나아가 ‘행정은 창조’라는 생각이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사고방식이고,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이런 흐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단체장의 역할이나 자질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단체장 출마 여부를 놓고 지역에서는 거론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현 시점에서 단체장 선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공직에 충실하고 창조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지역을 위한 방안이 무엇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지역 출신 공직자로서 소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 소청심사위원장으로의 활동상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다면.
“소청업무는 징계받은 국가공무원들에게 다시 한 번 재심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생소한 업무경험이다. 하지만, 위원장을 맡고 나서 나름대로 배우고 느낀 바가 매우 크다. 가장 큰 소감은 우리 국민과 공무원의 실체가 너무 괴리돼 있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사회의 실체가 바뀌어도 그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인지되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감히 나는 우리 공무원들이 일반 국민이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청렴하고 유능하며, 책임의식이 높다는 것을 단언하고 싶다. 과거 조신시대 이래 '부패의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는 공무원들이다. 그간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건만,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불신을 받고 있다. 공무원들이 얼마나 변하였는지를 소청업무를 보면서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부패의 추억'을 떨치지를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 생애를 공직에 바쳐 일하다가 한 번 실수로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들이 소청에서도 구제되지 못하고 공직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목도할 때 가슴이 아프다. 금품을 받은 공무원들도 물론 잘못이지만, 갖가지 방법으로 금품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올가미를 씌우는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돈이나 금품으로 우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의식이 야속하곤 했다. 공직사회는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대담·정리/서울=김종원 기자
kjw@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