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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내비두지, 왜 또 심란하게 하는지 모르것어.” 연기군 남면 양화리 마을회관에서 임붕철 이장(가운데)과 주민들이 행정도시 수정움직임과 관련해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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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20분 가량 내달리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심장을 만날 수 있다.
연기군, 우리 나라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대전과 연기군의 중간 쯤에 이르면 남면 양화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전월산 아래 장곡평야가 펼쳐져 있고 이 평야를 휘감아 금강 본류와 지류가 흐른다.
누가 봐도 ‘참 좋은 땅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장곡평야 끝자락은 일찌감치 국무총리 관저로 낙점됐다고 한다. 행정도시 계획상으로도 이곳은 정 중앙부에 속한다.
양화마을을 찾았을 땐 마을 주민 대부분이 상경집회에 참석하느라 한산한 분위기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아주머니 10여 명만이 마을회관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 마을 임붕철(58) 이장이 들어서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행정도시 문제로 옮겨졌다.
먼저 고향 떠난 이웃들의 일이 점점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데 따른 불안감 때문이었다.
“조금 있으면 나가야 하는디 인제 다 늙어서 자식새끼들한테 가지도 못하고 답답혀. 도시 나가믄 금방 죽을거 같어서 싫기도 하고. 여기서 발 붙이고 살아야 하는디 그렇게 될라나 몰라. 보상받은 것도 다 까먹고 계속 농사를 저야 하는디 내년부턴 4대강사업이다 뭐다 해서 농사도 못짓게 한다대.”
한 할머니의 푸념이 이어지자 다른 할머니가 “보상 때문에 영세민도 떨어져서 한 달에 23만 원 나오던 것도 못 받게 됐다”며 말을 이었다.
“보상할 때 얼마나 시끄러웠어. 보상 받았다니까 생전 얼굴도 안 비치던 자식새끼들까지 찾아와서 그 등쌀에 못이겨 마을 사람이 10명두 넘게 자살했잖여. 그래두 행정도시 한다니께 땅 내준건 데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뭐. 근데 또 왜그렇게 시끄럽게 난리랴.”
임 이장이 “정부가 세종시 계획을 바꾸려고 한다”고 하자 이구동성으로 정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얼마 전 행정도시 문제 때문에 한 마을주민이 부랴부랴 마을회관으로 오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터라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그냥 하던대로 하게 내비두지. 기왕 행정도시 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시골사람들 괴롭혔으면 됐지 왜 또 심란하게 하는지 모르것어. 백년대계를 3개월 안에 만든다는 것도 못믿겠고 이거 다시 하려면 2~3년 또 기다려야 하는 데 아무튼 이래저래 우리만 고생하게 생겼어. 세종시 얘기만 나오면 원통하고 억울해서 울화가 치밀어.”
이장을 상대로 화풀이는 했지만 벌써부터 밀려오는 걱정거리에 격앙된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행정도시와 관련한 마을 주민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연기군청 앞에 마련된 단식농성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유한식 연기군수를 시작으로 마을 주민에 이르기까지 벌써 20일 넘게 릴레이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단식농성을 시작한 김창재 주민생계조합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부가 행정도시를 더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자족기능을 확충해야지, 정부 이전을 쏙 빼놓고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는 건 어떤 이유로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성토했다.
고향을 떠난 이주민 모임인 세종시향우회 이완수 회장은 ‘행정도시 수정은 곧 정부의 사기행각’이라고 규정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정부 보상에 빨리 응했습니까. 행정도시는 국가적으로 가장 중차대한 국책사업이라고 하고 전국에서 다 이거 해야 한다고 하니까 버티지 않고 순순히 보상에 응한 겁니다. 물론 위안은 있었어요. 소위 말해 딱지라는 게 있는 데 당시 정부 사람들이 3억 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거라고 했어요. 당시에 보상비 2억 원 미만 받은 주민이 전체의 61%였고 이중 1억 원 미만이 50% 정도 되거든요. 이 사람들 대부분이 이 딱지 얘기만 믿고 보상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행정도시 안하고 기업도시 같은거 한다고 하면 분양가를 낮춰야 할 거고 그러면 자연히 주변 땅값도 떨어질 텐데 딱지값은 오죽하겠어요.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거죠. 고향 떠난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11일 행정도시 수정안을 만들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하고 3개월간의 대안 마련에 나섰다.
연기=황근하 기자 guesttt@cctoday.co.kr
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