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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선재 대전시티즌 감독은 “관중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축구가 재미없다는 것”이라며 관중들이 즐거워할 만한 경기를 위해 선수들과 함께 화끈한 축구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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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의 새 사령탑 왕선재 감독(50)이 지휘봉을 잡은지 한 달이 지났다. 스승인 전임 김호 감독의 불명예 퇴진으로 인해 지난 6월부터 대행체제로 팀을 이끌어오던 왕 감독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기량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등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5대 감독으로 전격 선임됐다.
선수시절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도 스타선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운 없는 축구인’ 왕선재는 대전에서 지도자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각인시키며 당당히 프로축구 감독 신고를 마쳤다. 왕 감독은 선수단을 단번에 장악하는 ‘용장’의 모습과 신뢰를 통한 선수 개개인의 저력을 끌어내는 ‘덕장’, 상대 팀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지장’의 덕목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다.
특히 왕 감독은 임시로 지휘봉을 잡은 후 20경기에서 8승 5무 7패의 주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FA컵 4강에 올려놓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입증했다. 또 왕 감독은 ‘팬들과 함께하는 축구,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시티즌’을 목표로 팬을 위한 마케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축구특별시, 대전’ 팬들이 왕 감독의 취임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아직은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초보지만 멀지않은 미래 '명장'이라 불리며 대전시티즌의 중흥과 대전 축구 열기를 되살릴 왕 감독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유효상 문화레저부장
-모든 체육지도자들이 꿈꾸는 프로구단 감독이 된 소감은.
“우선 나를 믿어주고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한다.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내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신중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성공적인 구단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동안 스카우터 코치 등으로 많은 준비를 해왔고 경력도 어느 정도 쌓였다. 이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대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벌써 취임 한 달이다.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 팀을 이끌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코치를 하면서 이미 팀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전력을 탄력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과 코치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코치는 선수들의 기량을 관리하는 일에 집중하면 되지만 감독은 구단 전체를 봐야하고 막중한 책임도 따른다. 감독대행을 맡고 있는 동안 구상했던 것들을 신중하게 팀에 적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력향상을 꾀하겠다.”
-모 기업이 있는 구단에 비해 어려운 여건인 데 팀을 이끌 복안은.
“감독이 되고보니 구단이 처한 많은 어려움들을 몸으로 느끼게 됐다. 구단에 무조건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살림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공개테스트 역시 그러한 구상의 일환으로 젊고 유망한 젊을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계획했다. 자본력이 약해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조금 노력한다면 훨씬 나은 선수들을 발굴할 수 있다.”
-올 시즌 목표는.
“가능성이 없는 공수표를 날리고 싶지는 않다. 현재 구단의 전력상으로는 올시즌에 이어 한 자리 순위를 안정적으로 이어 나가면서 6강권까지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올시즌 팀을 많이 다듬고 리빌딩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FA컵에는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FA컵처럼 단기 토너먼트 대회는 대전과 같은 구단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좋은 기회다. 최선을 다해 기회가 된다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도 출전하고 싶다.”
-프로구단 감독으로서 줄어들고 있는 관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관중들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이다. 여타의 이유를 막론하고 관중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축구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지만 이는 곧 축구인들이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선수들과 함께 관중들이 즐거워할 만한 경기를 만들고 축구장을 찾았던 이들이 다시 축구장을 찾을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대전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다.”
-팀 컬러를 어떻게 바꿀 계획인가.
“올시즌 하반기부터 짧은 패스를 위주로 미들에서부터 하나씩 오밀조밀하게 만들어가는 축구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밀하고 게임 전체를 재미있게 만들어가는 패스게임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패스 게임은 모든 선수들이 빈 공간을 끊임없이 채워나가야 하는 체력적인 능력이 많이 요구되는 플레이 스타일이다. 올시즌 후반기에 2-1 패스플레이 등 세밀한 플레이로 몇 번 득점까지 만들어냈다. 구상대로 팀을 잘 다듬으면 스타플레이어가 없어도 강력하고 잘 짜여진 팀을 보여드릴 수 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이렇다 할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아쉬움은.
“감독으로서 능력이 좋은 선수 욕심이 왜 없겠는가. 인기스타로 불리는 선수들이 있다면 팀 인기도 역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분명 긍정적인 효과까지 넘볼 수 있다. 그러나 축구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 11명이 함께 보여주는 스포츠다. 11명의 만들어내는 잘 짜여진 화음과 같은 유기적인 움직임들이 화끈한 경기를 만들어낸다. 현재 영입대상 역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다.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스타성보다 중요하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축구부가 없었다. 5~6학년 때는 야구부에 활약했지만 워낙 축구를 좋아하고 잘해서 지역 축구대회가 있으면 언제나 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체육 선생님이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해서 갔더니 테스트를 받았고 그 해 소년체전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그것이 인연이 돼서 이렇게 평생 축구인이 됐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78년 방글라데시에서 열렸던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북한과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나이에 북한과 축구를 한다는 것에 대해 긴장도 많이 했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뛰었던 경기였고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가게됐다. 3번째 키커로 나서게 됐는데 그 짧은 시간에 수 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결국 6번째 북한 키커의 공격을 골키퍼가 막아내며 북한에게 신승을 거뒀다. 당시 우리나라가 1976년 청소년대회에서 북한에게 패한 상황이었기에 또 지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벤치가 울음바다가 되는 등 그날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호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지 않나.
“솔직히 외롭고 힘들다. 그러나 가족들 생각을 하면 더 강해지는 것이 한국의 아버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과 이메일도 주고받고 전화도 자주 주고받는다. 프로구단 감독이 됐다는 말에 애들이 아버지를 많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대견스럽고 고맙다.”
-자녀가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의 눈이 아니라 감독의 눈으로 평가했을 때 가능성이 있고 센스를 갖추고 있다면 당연히 시키고 싶다. 재능을 갖추고 있는데 왜 재능을 덮어두겠나. 재능만 보인다면 적극 지원해주고 싶다. 어찌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의지다. 본인이 즐거워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은 부모로서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
-끝으로 대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비시즌 동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하겠다. 선수단 구성은 대략 완성되어 가며, 외국인 선수들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선수가 들어와준다면 상당히 흥미롭고 화끈한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 될 것이다. 국내와 국외 전지훈련을 통해서 선수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축구특별시 이름에 걸맞는 팀으로 거듭날 수 있게 준비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 팬 여러분들께서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 주셔서 함께 응원해주신다면 더 강한 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대전시티즌 축구 참 재미있다’, ‘다음 경기가 기다려진다’는 생각이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
사진=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왕선재 대전시티즌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 1959년 3월 16일(만 50세)
△학력 : 경남 산청초 졸업, 산청중 졸업, 부산 동아고 졸업, 연세대 체육학과 졸업
△경력 : 1978년 청소년대표, 1984년 월드컵대표, 한일은행 축구단(1984), 럭키금성 축구단(1985~1986), 포항제철 축구단(1987~1988), 울산현대 축구단(1988~1989), 원주공고 감독(1992~1994), 호주 오븐클럽 감독(1995~1997), 동아대 감독(1998~2000), 수원 삼성 스카우트겸 2군 코치(2001), 수원 삼성 수석코치(2002~2003), 브라질 Adap Galo Maring 감독(2007), 대전시티즌 수석 코치(2007~2009)
△상훈 : 제10회 및 11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 축구대회 우승, 1978년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 우승, 1983년(한일은행) 코리안리그 우승 및 득점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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