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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대 박물관 이현숙 학예사가 손으로 가르키는 부분(머리와 맞닿은)이 백제시대 쌓은 성벽 내축부.
공주=이성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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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의 일부가 석성(石城)이었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공주대박물관은 17일 열린 '공산성 성안마을 제2차 문화유적 발굴조사' 자문회의에서 백제시대 축조된 성벽의 내측부(내성벽)가 석축의 형태로 이뤄져 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백제시대 공산성의 성곽이 그간 알려진 것처럼 전부 토성이 아니며, 일부는 '석성'이었음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백제시대의 석성은 공주대박물관이 충청감영과 중군영(中軍營) 등 조선시대 건물지의 기존 발굴지 인근에 대한 추가 발굴(2차발굴)과 병행, 백제시대 성곽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북루 인근 성벽구간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은 축조시기에 따라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구분된 가운데 백제시대의 성벽은 내성벽이 석축된 형태로 발견됐다.
'백제 성벽'의 기초시설은 지반층(고토양 쐐기층)을 20~50㎝ 깊이로 'L'자로 파 턱을 만든 다음, 그 안에 성벽을 축조하는 방식으로 건립됐고, 자연석재를 이용한 석돌이 기초부에서 9단(1.8m) 정도 석축열을 이루고 있다.
성벽의 경우 거친 자연석을 '허튼층쌓기' 수법으로 구축하고, 석재 사이의 빈틈은 잡석을 끼워넣거나, 할석을 '종석쌓기' 함으로써 견고성을 높인 석축기법이 이용됐다.
이는 부여 나성과 성흥산성, 노성산성 등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는 백제 성곽의 독특한 기초시설 축조수법으로, 웅진도읍기 백제의 석축기법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하고 있고, 기존 공산성 내 추정왕궁지의 연지, 영은사 앞 백제시대 지당의 축석기법과 동일한 형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시대에는 성벽을 쌓으면서, 기존 축성돼 있던 백제시대 성벽 내벽부를 붕괴시키지 않고, 기초부로 활용하여 상부에 그대로 덧붙여 쌓았다는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백제 2차 문화층의 경우 통일신라문화층과 중복되며 불규칙하게 훼손 면을 이루고 있음이 드러나 통일신라시대에도 백제성이었던 공산성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공주=이성열 기자 lsyyy@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