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자활영림단은 지난 1999년 산림청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했던 근로자 8명이 2004년 산림사업체로 설립했다. 특별한 기술없이 시작한 공공근로에서 기술을 전수받고 어엿한 산림사업체로 거듭난 자활영림단은 연 평균 1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올리며 새 희망을 쓰고 있다. 산림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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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산 중터에서 굉음과 함께 불량 나무들이 쓰러진다.산림영림단원들이 각각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묵묵히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나무들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복장과 전기톱, 엔진 연료 등으로 무장(?)한 영림단원들이 산림의 건강성을 위해 개량사업을 펼치고 있다.
IMF 당시 노숙인과 다름없던 영림단원들은 산림청의 녹색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단순한 산림산업에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산림산업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충남 공주에서 천연림 개량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청산자활영림단. 청산자활영림단은 새벽밥을 먹고 사업장인 산 중터에서 오전 7시 모여 조회를 갖는다.
조회 후에는 ‘오늘도 안전히’를 외치는 등 간단한 안전교육을 실시한 뒤 각자 장비점검을 마치고 해당 일터로 향한다.
영림단원들은 그날 해당 영역에서 굉음을 내는 전기톱을 가지고 온 종일 불량 나무를 제거하고, 퇴비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주변 정리를 단정히 한다.
청산자활영림단은 지난 1999년 산림청 공공근로에 참여했던 단순 노무직원들 중 8명이 모여 설립했다.
청산자활영림단원들은 현재 충남 공주 대산리에서 산림청의 숲가꾸기사업 중 천연림 개량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지난 1999년에는 IMF 외완위기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며 삶의 의지를 내놓았던 일반 서민이었다.
이들이 보람을 얻고 새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산림청의 일자리 창출사업.
청산자활영림단원들은 지난 1999년 산림청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해 그야말로 단순 노무직으로 활동했다.
김정휘(64) 청산자활영림단 대표는 "IMF 당시 직장을 잃고 아침마다 집을 나와 정해진 곳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세상과 제 자신의 한탄하며 길거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취직도 생각해 봤지만 어떤 기술도 없이 새 직장을 가지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대표는 IMF 이전 인삼 관련 자영업을 10년 동안 꾸려 왔다. 그러나 IMF로 인해 사업 사정이 하향세를 그리더니 결국 사업 포기라는 결단을 내렸다.
빚만 떠안고 열정을 보낸 사업을 접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매일 눈을 뜨면 가족의 생활고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갔고,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로지 길거리와 술이 벗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산림청의 공공근로에 발을 내디디며 삶의 환한 빛을 보게 됐다.
김 대표는 1999년 당시 특별한 기술 없이도 일시적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산림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됐다. 공공근로를 지속하던 지난 2004년 숲가꾸기에 자질 있는 공공근로자 중 사업에 뜻이 있는 8명이 영림단 설립을 구상했다.
산림청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전문적인 산림교육을 지원, 총 6주간의 교육비와 인건비를 제공했다.
단순한 공공근로자에서 어엿한 산림사업 사업체를 조직한 자활영림단은 지속적일 일거리 창출로 새로운 꿈을 펼치게 됐다.
자활영림단은 사업 개시 후 연평균 6건, 100㏊의 사업을 펼치는 성과를 냈고, 올해도 2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 대표는 “우선 생계를 위해 공공근로에 뛰어들었는데 이 같은 사업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새로운 사업을 개시하면서 가족간의 정도 더욱 커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림 속에서 일을 할 때면 홀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세상 잡념이 없이 오로지 일에만 집착할 수 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늘 상쾌하다”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예전 공공근로에서 주인의식 없이 하루하루 때우는 식으로 보냈지만 지금은 하나의 사업체로서의 자긍심과 보람을 갖고 숲가꾸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
최장준 기자 thispro@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