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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수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대전문화재단이 정상궤도로 달릴 때까지 관의 힘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시민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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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더운 피가 남아 있습니다. 대전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올해 대전지역 문화계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는 바로 대전문화재단의 출범이었다.
관 주도로 이뤄졌던 문화예술지원을 민간 주도로 바꾼 것으로 이는 대전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대전문화재단이 출범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문화예술계 전반의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었고, 또 다른 권력기구의 출현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했다.
대전문화재단이 출범과 동시에 기로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대전문화재단의 향후 행보에 기대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쇠퇴한 지역문화의 발전을 이룰 든든한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란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대전문화재단의 행보가 요즘 분주하다. 이사진을 대상으로 새벽조찬모임을 갖는가하면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과의 소통을 위한 간담회 마련 등 소통 강화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최근 분주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박강수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만나 지역문화계의 과제와 향후 대전문화재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대담=유효상 문화레저부장
-문화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었나.
"대학에 있을 당시 예술대학을 독립적인 건물로 지었다. 또 맨스콰이어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외국에서 공부한 예술인들이 무대(서울 예술의전당)에 설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전공이 마케팅이다. 문화마케팅 디자이너가 되어 타다 남은 더운 피를 대전문화발전을 위해 불태우고 싶다."
-대전지역 문화계가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소통이 필요하다. 생산자와 생산자를 후원하는 사람들, 향유자, 매개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주요 문화단체장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와 예술은 소통을 통해 발전한다.”
-대전문화재단이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기금 조성과 창작작품에 대한 지원확대다. 대전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도 해야 한다. 이밖에도 세계적인 문화예술인을 키우는 것과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증진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대전문화재단 출범으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문화예술 정책의 개발과 지원이 관으로부터 민으로 이관됐다는 점이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데 서로 힘을 합하면 시너지가 생길 것이다. 그동안 한쪽 날개로만 비행을 했다면 이제는 민과 관의 협력이라는 두 날개로 비상할 때다."
-취임 초 지역 예술인들의 해외진출을 돕겠다고 밝혔는데 실현가능한 얘기인가.
"최근 '대전아리랑'이 만들어졌다. 가사도 독특하고 대전의 개성이 잘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이들 창작 작품의 국제화가 빠른 시간에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곧 있을 문화예술진흥기금 공모와 관련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화예술단체들로부터 듣고 토론하고 더 할 것과 뺄 것을 찾아서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것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대전이 지향하고 있는 문화도시를 미리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문화예술은 시민들에게 행복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대전이란 크고 넓은 뜰에 문화를 꽃피게 하면 시민들도 그만큼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 즉 대전의 힘을 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이미 대전에는 과학이 있고 환경을 지켜주는 나무가 있다. 과학과 나무 사이에 문화예술을 심는다면 대전을 미(美)와 꿈이 있는 도시, 인간적인 도시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미리 그려 본 대전의 미래다."
-대전문화재단은 예술인들만을 위한 기구인가.
"작게 보면 그렇다. 그러나 크게 보면 대전문화예술의 정책개발과 지원을 아우르는 기구다. 대전문화재단은 문화예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마케팅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문화의 중앙 집중이 심한데 나름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혹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나.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인이 한 마음이 되어 ‘선택과 집중’을 위해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친 자기주장과 욕심을 먼저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그 빈 공간에 보다 좋은 창작물이 채워진다고 본다."
-정책실현을 위한 기금 확충방안을 갖고 있나.
"사람이 커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한 두 살까지는 엄마 젖이나 분유를 먹는다. 나이가 들면 밥을 먹기 시작하고 청년이 되면 자기 스스로 한다. 대전문화재단은 이제 막 출발했다. 어린 아이다. 그래서 당분간 엄마 젖을 먹어야 한다. 즉 당분간은 시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반다지기에 주력하겠다."
-대전시와 문화재단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새의 날개와 같다. 대전문화재단이 높게 비상하려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쪽 날개는 관이고 또 다른 날개는 민이다. 대전문화재단이 정상궤도로 달릴 때까지 양 날개가 나름대로의 기능을 다해 주어야 한다. 특히 초창기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관의 힘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시민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족사에 대해 궁금증이 적잖다.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
“참 오래된 얘기다. 25세 때 결혼했으니까 정확히 48년 됐다. 고대 56학번인 나는 3학년이었고 아내는 당시 1학년으로 법대에 다녔다. 누가 먼저 프러포즈 했는지는 서로 주장이 달라 지금도 종종 논쟁을 벌인다. 자연스레 가까워져 오랜시간을 함께 했던 것 같다.”
-집안에서 대학총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흔치 않은 일인데.
“넷째 동생(박철)이 한국외대 총장이다. 둘째 동생은 동대문구청장을 역임했고 셋째는 뉴욕에서 큰 사업을 한다. 여동생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교사로 일하고 있다.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고 본다. 재단 사무실이 위치한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 있으면 아트홀과 앙상블홀을 찾는 많은 시민들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무한한 가능성을 느낀다. 지금껏 그래왔듯 시민들께서 문화예술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티켓을 많이 팔아주고 예술작품도 많이 구입해주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곧 대전의 꿈이고 미래다. 또한 가정의 힘이 된다."
정리=김항룡 기자 prime@cctoday.co.kr
<프로필>
△1938년 강원도 평강 출생
△학력
1956년 배재고 졸업
1961년 고려대 학사
1971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1977년 건국대대학원 경영학 박사
△경력
1978~1994년 경기대 기획실장·경상대학장, 경영대학원장
1987~1990년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1988~1989년 (사)한국라이온스총재
1995~2003년 배재대총장
1996~1999년 한국상품학회회장
2006~2009년 (사)바르게살기운동회장
1991~현재 (재)성진장학회 이사장
△상훈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
-1978년 대통령 표창(교육부)
-2008년 무궁화봉사대장
-2009년 국제라이온스 지도력 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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