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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1주년 3·1절을 맞아 새롭게 단장된 청주시 우암산 3·1공원의 모습이다. 과거의 어두웠던 모습을 벗고 새롭게 단장해 민족혼을 되살리려는 계기와 함께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덕희 기자 withcrew@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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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80년 조성된 청주 3·1공원이 30여 년 만에 새단장을 마쳤다.
91주년 3·1절을 맞아 청주 3·1공원내 동상이 건립돼 있는 충북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해 보고 과거 일제치하의 고통 속에서도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들의 남다른 애국애족 정신을 되새겨 본다.
◆정춘수 동상 대신 횃불 조형물
청주시는 91주년 3·1절을 맞아 지난 1980년 8월15일 조성된 3·1공원을 30여 년 만에 재정비했다.
우암산 기슭에 5700㎡ 규모로 건립된 3·1공원은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 출신인 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석구, 신홍식, 정춘수 선생 등 6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들의 동상과 독립선언서비를 세워둔 곳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시설 곳곳이 노후화되고 지난 1996년 2월8일에는 정춘수 선생의 친일행각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에 의해 선생의 동상이 철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시는 총사업비 6억3000만원을 들여 민족대표 5인의 동상을 황금빛으로 재도색하고, 정춘수 동상의 좌대 대신 횃불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정비를 마무리했다.
◆충북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청주 3·1공원의 새단장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며, 또한 갈등의 시대에 사라져가는 민족혼을 되살리는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1861~1922년) 선생은 청원 출생으로 천도교 제3세 교주를 지낸 인물이다. 특히 민족대표 33인으로 기독교와 불교·학생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도록 명하는 등 3·1운동을 주도했다.
함안군수·육군참령을 지냈던 권동진(1861~1947년) 선생은 괴산 출생으로 3·1운동의 핵심적 지도인물로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이후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된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를 조직해 부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청원 출생인 권병덕(1867~1944년) 선생은 손병희 선생과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을 함께 했으며, 3·1운동에도 민족대표 33인으로 동참해 2년간 복역했다.
청주 출생인 신석구(1875~1950년) 선생은 3·1운동 참여는 물론 신사참배에 반대해 옥고를 치른 감리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청주 출생인 신홍식(1872~1937년) 선생은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던 중 3·1운동 계획에 대해 듣고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이를 계기로 3·1독립선언서에 기독교 대표로 서명한 인물이다.
한편 3·1공원내 동상이 철거된 정춘수 선생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주 출생인 정춘수(1875~1951년) 선생은 기독교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신간회에도 가담했던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1938년 변절해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에 가입해 신사참배를 독려하는 등 친일행적을 남겼다.
이 때문에 정춘수 선생에 대한 평가는 그가 앞서 남긴 다양한 독립운동 활동보다는 친일행적에 집중되면서 주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초심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을 그의 행보를 무조건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는 옹호론도 적지 않다.
전창해 기자 widesea@cctoday.co.kr
서세영 기자 fafamamagir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