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청주 성안길의 철당간 광장에서 결혼이주 충북거주 일본여성모임인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충북지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일본정부를 대신해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고 있다. 이덕희 기자 withcrew@cctoday.co.kr | ||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청주시 성안길 철당간 광장. 기모노 차림에 양손엔 태극기와 일장기를 든 40여 명의 일본여성들이 가곡 ‘고향의 봄’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또렷한 발음은 아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이들은 집회 내내 ‘한일 우호’를 외쳤다. 일본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신 사죄의 뜻을 밝히며 거리로 나섰다.
미야자키 사요꼬(58·여) 씨는 한국에 온지 29년째인 일본 여성이다. 그는 한국에서 생활을 하며 일본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한 36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전후에도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조국 일본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딸을 둔 같은 여성으로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았을 참담한 고통에 가슴이 아팠다. 처음 독립기념관을 찾았을 때도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얼마나 고통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까지 설쳤다고 한다.
이날 서명운동을 하던 아리아 미요코(53) 씨는 “일본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며 “한국에서 TV를 보고서야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으며 일본 정부는 왜 사실을 숨기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전했다.
24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충북 청주로 온 그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에게 폭행당했던 시아버지께 며느리로 인정받는 데 7년이 걸렸다”며 “시집 온 후 반일감정을 없애려는 노력부터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인과 결혼해 충북에 살고 있는 일본 여성들로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를 씻어내자는 취지로 지난 5월 결성된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단체는 이날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실시했다.
호소문을 통해 이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이웃나라 한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역사적 진실을 우린 한국에 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며 “특히 위안부란 이름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한 분들에게 일본인으로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호소문이 발표되는 중간 일부 여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모임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비판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 6월 한 일본인이 ‘위안부 소녀상’ 옆에 말뚝을 박는 사건이 발생하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진상조사를 탄원서를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특별조사팀을 구성할 것을 한국 정부에 제안하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에 노력해왔다.
같은 달 16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일 양국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 우호관계를 구축해달라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에리카와 야쓰에(65·여) 대표는 “한국으로 시집 온 일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결성한 모임”이며 “우리 활동이 역사적 죄를 씻기엔 부족하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언 기자 whenikis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