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초등생 성폭행 등 최근 잇따르는 성범죄에 대해 화학적 거세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공중화장실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성범죄자에 대해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부가 최근 “성범죄자가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에 반한 것으로, 법원이 성범죄에 대한 엄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전력공사 직원인 A(35) 씨는 대전시 서구의 한 빌딩 근처를 산책하다 인근 여자화장실로 들어가는 B(29·여) 씨를 발견했다.
순간 호기심을 느낀 A 씨는 충동적으로 B 씨를 뒤따라 여자화장실에 들어갔고 안에서 문을 잠근 뒤 “소리를 지르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이후 A 씨는 반항하는 B 씨를 제압한 뒤 강제로 성폭행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동영상까지 촬영했다.
대법원 형사3부는 이 같은 혐의(성폭력처벌법 상 주거침입 강간)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과 신상정보 5년 공개를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주거침입 강간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법리 오해의 위법이 없다”며 A 씨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결국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과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셈이 됐다.
1심 재판부는 판결 당시 양형 사유로 “A 씨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벌금 전과 외에 다른 전과가 없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며 “또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도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최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경찰청 등이 성범죄 처벌과 수사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에 반하는 판결로 논란이 예상된다.
여성가족부는 19세 미만 청소년 대상 강간에 대해 13세 미만처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수위를 높이고 성범죄자가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성범죄 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친고죄 조항의 전면 폐지를 검토키로 했고, 경찰청도 다음 달 말까지를 ‘성폭력 범죄 집중수사’ 기간으로 정해 성폭력 미제사건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