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박 모(42·대전시 서구) 씨는 침울한 경제 상황만큼이나 올 연말 모임이 두렵기만 하다.
올 초부터 저점투자의 기회라며 가족·친지는 물론 동창 등 지인들에게 자사의 펀드와 파생상품 등의 가입을 권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 씨는 자사의 상품에 대한 실적도 채우고 지인들에게도 수익을 안겨줄 수 있어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결과는 비참할 뿐이다.
박 씨는 “당장이라도 ‘박 서방, 내 돈 가져와’라는 장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게다가 주변 지인에게도 상품 가입을 권한 터라 다가오는 연말모임 생각만 하면 우울하기만 하다”고 한숨졌다.
이 같은 박 씨의 사정에 대해 상당수의 은행원과 증권사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부분의 은행·증권 종사자들은 실적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사의 투자상품 가입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대부분 큰 손실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초에 걸쳐 봇물을 이룬 투자 신상품에 가입을 권유한 것은 결국 지수가 최고점 부근에서 가입하게 된 셈이다.
모 증권사 직원 A(37) 씨는 “지난해 하반기 국내외 증시가 최고조에 달했고 이에 따라 올 초까지 각종 투자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며 “때문에 최고점 부근에서 투자가 이뤄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손실도 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상당수의 은행·증권사 직원들은 자신들도 이미 자사의 상품 대부분에 가입돼 있어 스스로도 큰 손해를 보고 있지만, 지인들의 손실과 이에 대한 원망에 이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상태다.
이들은 급한 데로 지인들의 손실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올해 금융권을 덮친 유동성 위기로 여건은 최악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본의 아니게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신청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손해를 추스르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가까운 친지들의 손실까지 그냥 지나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모 은행 관계자는 “임금 동결에 이어 각종 성과급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하는 동료들도 늘고 있다”며 “일단은 급한 ‘땜방’이 필요한 지인들의 손실분부터 채워가고 있지만, 혹이나 인간관계에 큰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