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치러진 제18대 대선 결과 충북은 연령대별로 뚜렷하게 표심이 나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당선인은 충북지역 전체 선거구에서 1위를 차지해 충북이 ‘박근혜의 텃밭’임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이번 대선에서 충북지역 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은 56.22%,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43.26%다. 전국에서 박 당선인이 51.55%, 문 후보가 48.02%를 얻은 것과 비교하면 충북은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충북의 표심이 박 당선인에게 향한 것은 세종시와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에도 충북에서 박 당선인의 득표율이 예상보다 저조했던 것은 어느 한 쪽에 몰표를 주지 않는 충북 특유의 정서와 함께 연령대별로 표심이 나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 대선에서 충북의 총 유권자수는 123만 4225명이다.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19세~30대는 44만 6045명(36%), 40~50대는 49만 9743명(40.4%), 60대 이상은 28만 8437명(23.3%)이다.

충북에서 젊은층이 가장 많은 곳은 청주 흥덕구다. 19세~30대가 43.5%에 달한다. 반면 60대 이상은 충북 평균을 훨씬 밑도는 14.7%다. 이곳에서 박 당선인은 50.80%로 충북도내에서 가장 저조한 득표율을 올렸다. 그 다음은 오창과학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청원군이다. 청원군의 19세~30대는 41.8%로 흥덕구에 이어 2위다. 이곳에서 박 당선인은 51.7%로 역시 두번째로 저조한 득표율을 올렸다. 세번째 역시 일치했다. 청주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상당구의 19세~30대는 39.3%다. 흥덕구에 비해 낮지만 충북 평균 보다는 높다. 이곳에서 박 당선인은 5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확히 낮은순으로 3번째다.

반면 박 당선인이 높은 지지율을 얻은 지역은 노년층 구성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박 당선인이 60%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은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영동군, 보은군, 옥천군, 괴산군이다. 보은·옥천·영동은 충북에서 남부3군으로 구분되며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보인다. 3곳에서 박 당선인의 득표율과 50대 이상 유권자 비율은 △보은 64.07%·41.2% △옥천 64.49%·35.2% △영동 64.07%·37.9%다. 3개 군 모두 노인층이 충북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과 함께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라는 점도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충주와 제천이 충북전체 연령대별 유권자 비율과 비슷한 분포를 보이면서도 박 당선인의 득표율이 높았던 것은 여권성향의 정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부 4군에서 유일하게 박 당선인의 득표율이 60%를 넘은 괴산군은 19세~30대 유권자 비율이 충북에서 가장 낮은 21.6%, 60대 이상은 두 번째로 높은 40.7%였다.

심형식 기자 letsgo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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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앞으로 충북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해 한범덕 청주시장, 이종윤 청원군수 등 민주통합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이끄는 시·군의 주요 정책과 역점사업의 향배가 주목된다. 특히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지형 변화도 예상된다.

2010년 6·2지방선거는 민주통합당의 압승이었다. 민주당은 충북지사를 비롯해 청주시장, 충주시장, 청원군수, 진천군수, 증평군수 등 5개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다. 새누리당은 제천시장, 단양군수, 음성군수를 당선시키는데 그쳤고 광역단체장까지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지방의회도 민주당 승리로 끝났다. 제9대 충북도의회에 입성한 35명의 도의원 가운데 민주당이 22명으로 과반수를 넘어섰다. 새누리당은 4명으로 지난 8대 도의회에서 90% 이상을 차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도의회뿐 아니라 청주시의회를 비롯해 일부 지방의회도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하면서 새누리당이 크게 위축됐다. 전통적으로 지방선거에서 강세를 보였던 새누리당이 크게 패하면서 지역의 정치지형도가 바뀌었다. 여당 소속 정우택 전 도지사에서 야당 도지사 체제로 민선 5기가 시작됐고, 청주와 청원의 단체장과 지방의회까지 야당이 득세하면서 야당강세 지역이 됐다.

두 번의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은 2010년 7·28 충주 보선에서 윤진식 후보, 2011년 10·26 보선에서 이종배 후보, 4·11총선에서 8석 가운데 5석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면서 ‘여대야소’ 지형으로 바꿔놓았다.

그간 충북민심은 집권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4·11총선과 18대 대선 결과를 놓고 볼때 2014년 지방선거까지는 새누리당 중심 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서의 역할과 힘이 이번 대선 승리로 더욱 탄력을 받으면서 지역 국회의원들의 위상 또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등 차기 선거 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민선 6기 지방선거라는 대규모 정치수요를 앞두고 당 내부변화, 정계개편과 맞물려 지역 국회의원들의 각개전투가 치열해 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권이 정권을 창출하지 못함에 따라 현역 중진급 국회의원 등의 정부·청와대 진출이 좌절되면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와 통합청주시장 등의 내부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낳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제시한 충북 공약 대부분이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추진 중인 정책이나 역점사업과 일치하다 보니 차기 정부와의 충돌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당적과 기본적인 정치철학이 다른 만큼 대립각을 세우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예산확보 등 지역발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야당 단체장으로서의 정치력 부재로 이어질 수 있어 차기정부와의 효율적인 공조체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정가의 한 인사는 "박 당선인이 충북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약한만큼 정부와의 초당적 협력만 유지되면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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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는 시중금리 인하에 따라 21일부터 국민주택기금 대출금리와 청약저축 금리를 인하한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전세자금 등 서민 대출금리는 자금별로 0.3~0.9%포인트 인하되고, 주택사업자를 위한 건설자금 대출금리도 자금별로 0.3~2.0%포인트 내리게 된다.

다자녀가구, 다문화가구, 장애인 등에 대한 우대금리는 신규분부터 0.3~0.5%포인트 하향 조정된다.

이와 동시에 기금의 주요 조성재원인 청약저축(주택청약종합저축 포함) 금리도 가입 기간별로 각각 0.5%포인트씩 인하한다. 또 그동안 불합리하다고 지적됐던 구입·전세자금 소득요건도 일부 개선해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세대주 연소득 3000만 원 이하를 대상으로 했던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의 경우 부부합산 연소득(상여금 포함)이 4000만 원 이하로 변경되고, 부부합산 연소득 5000만 원 이하였던 생애최초 구입자금의 소득요건도 부부합산 연소득(상여금 포함) 5500만 원 이하로 확대된다.

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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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대선 당선인이 확정되면서 청와대가 전담 경호대를 활용한 전담 경호에 돌입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날부터 내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일까지 당선인에 대한 경호안전 임무를 수행할 전담 경호대 활동을 시작했다.

전담 경호대는 근접 경호요원은 물론, 폭발물 검측요원·통신지원 요원·보안관리 요원·의료지원 요원·음식물 검식 요원 등으로 이뤄져 전천후 경호를 본격화한다.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특수 제작된 벤츠 600 방탄차량이 제공되며 경호처 소속 전문요원이 운전을 전담한다. 당선인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필요에 따라 교통신호 통제 편의도 제공된다. 만일 당선인이 요청하면 대통령 전용기나 헬기, KTX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청와대는 당선인의 경호안전에 문제가 있거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할 경우 자택이 아닌 별도의 시설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당선인의 사저와 사무실 등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해 출입자 검색을 실시하는 등 당선인에 대한 24시간 경호·경비 활동을 실시할 예정이다.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완벽한 경호제공을 위해 경찰청·국방부 등 경호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를 확고히 구축하여 최고 수준의 완벽한 경호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김종원 기자 kj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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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18대 대선의 고지에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의도치 않게 맺은 청와대와의 인연이 세월을 넘어 숙명이 된 순간이다.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정치인으로서 그녀의 삶은 역사의 수레바퀴와 함께 굴렀다.

어린 시절 청와대의 삶은 자연스레 정치 감각을 기르는 영양분이 됐다. 대한민국이 요동치는 1970년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피습으로 자의 반 타의 반 퍼스트레이디가 됐던 경험은 오늘날 그녀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은 한국 현대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아버지로부터 정치적 유산과 역사적 평가라는 부채를 동시에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짊어진 과거 유산과 부채는 새로운 정치를 위한 하나의 씨앗으로 일궈졌다.

 

   
▲ 한나라당 시절 유세 강행중 때 손에 붕대를 감고 유세하는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와의 인연

박 당선인은 1952년 2월 2일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이의 맏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거처를 옮긴 곳은 청와대였다. 당시 장충초등학교에 다녔던 그녀는 6년 내내 ‘수’와 ‘우’만 받는 모범생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줄곳 1등을 도맡는 등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엄친딸’로 곱게 자랐다.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수석졸업을 하는 등 그녀의 삶은 순탄했다.

 

   
▲ 한나라당 시절 대선에 앞서 경선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자리한 모습. 연합뉴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하지만 얄궂게도 역사의 흐름은 그녀의 운명을 놔두지 않았다.

1974년 만 22세, 대학을 갓 졸업한 박근혜 당선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습으로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비보에 프랑스 유학을 접어야 했다. 무척이나 어린 시절, 청춘의 푸른 꿈을 뒤로한 채 어머니의 뒤를 이어 청와대 안 주인이 됐다.

어머니를 총탄에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로서 안으로는 청와대 살림을 도맡고 밖으로는 대외 귀빈을 맞이하는 등 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했다. 그러나 운명은 박 당선인의 삶을 또다시 절망으로 내몰았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도 궁정동 안가에서 피습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한순간 퍼스트레이디에서 고아 신세로 전락했다. 급작스런 삶의 변화에 따라 그녀는 어린 동생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야만 했다. 절망의 시기였다.

 

   
▲ 2008년 1월 특사자격으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환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1998년, IMF 사태를 맞은 대한민국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들의 희망은 땅으로 무너졌다. 70년대 일궈낸 경제성장의 기적이 거품처럼 꺼져갈 때 박 당선인은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달성군 제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뛰어든 그녀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절박함과 “국민들의 어려운 삶을 해결해야겠다”는 신념이 정치 입문의 원동력이었다는 게 박 당선인의 고백이다.

정치 입문 이후 박 당선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여성 정치인이라는 조건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같은 조건 탓인지 그녀는 2000년 당 부총재를 거쳐 2002년 대선 후보로까지 물망에 오르는 정치적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어 그녀가 스스로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신뢰의 이미지를 획득하고 정치 능력을 선보인 것은 2004년부터였다. 고(故)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시도가 역풍을 맞고 ‘차떼기 사건’ 등 당의 신뢰가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녀는 유감없이 정치력을 발휘했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당 대표직을 맡아 이른바 ‘천막당사’에 들어가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며 국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되돌렸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1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란 절망을 뒤엎고 121석을 얻는 기적을 만들었다.

선거의 여왕이란 칭호도 얻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목숨만큼 소중히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박 당선인의 회고와 같이 이때부터 그녀는 신뢰의 아이콘으로 국민에게 다가섰다.

2006년 5월 지방선거는 박 당선인의 저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그녀는 지방선거 유세 중 테러를 당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수술한 직후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로 선거 판세를 역전시키고 당 안팎의 견고한 신뢰를 얻게 됐다.

◆또 한 번의 위기를 딛고

2012년 한나라당은 또 한 번의 위기에 빠졌다. 당 대표를 둘러싼 돈 살포의혹과 최구식 수행비서의 디도스 공격 등으로 한나라당은 존폐위기에 처했다. 또다시 박 당선인은 난파선이 된 한나라당을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다.

전국을 돌며 그녀의 신발 밑창은 금세 다 닳았다. 많은 악수 탓인지 손에는 흰 붕대를 감아가며 거리유세를 이어 갔다. 박 당선인은 “집권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쇄신에 들어갔다. 그 결과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이 150석 이상을 확보하며 제1여당의 자리를 견고히 지켰다.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굳히고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통해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던진 박 당선인은 지난 2002년 16대 대선 경선 출마 후 3수 만에 대선후보가 됐다. 2년 3개월 동안 제1야당을 탄탄하게 이끌어 온 대가였다.

하지만 대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박 당선자의 대권 도전은 쉽지만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운명은 박 당선인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논쟁도 일었다. 경쟁상대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기세도 대단했다. 하지만 시대정신은 박 당선인을 선택했다. 그동안 박 당선인이 보여준 원칙과 신뢰의 정치가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였다.

박재현 기자 gaemi@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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