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는 자전거 보험서비스 개시 이후 20개월 동안 시민 707명이 8억 7100만 원의 보험금 혜택을 받았다고 9일 밝혔다. 자전거 보험은 시가 시민들이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시책으로 대전시민은 별도의 가입절차 없이 자동으로 피보험자로 가입돼 혜택을 지원받는다. 대전시는 자전거 보험을 통해 자전거 사망사건 16건의 유가족에게 4억 7400만 원, 후유장애 7건에 9000만 원 등을 지원했다.
자세한 보험금 지급사유 및 청구방법 등은 LIG 손해보험사 또는 대전시 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시 관계자는 “자전거 보험은 자전거타기 제일 좋은 도시 건설을 목표로 시가 시민을 위해 가입한 보험”이라며 “대전시민이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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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10 “대전시 자전거 보험 괜찮네”
- 2011.01.10 “뒷바라지도 못해줬는데 훌륭한 선수 돼줘서 고맙지”
- 2011.01.10 ‘괴물’ 류현진 연봉 4억 재계약
- 2011.01.07 ‘아쿠아월드 조사’ 급물살
- 2011.01.07 겨울에도 차마 꽃잎을 떨구지못한 가을꽃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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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호 선수 아버지 박제근씨. | ||
약속시간에 맞춰 집에 들르니 박제근(69) 씨는 출타 중이었다. 마을회관에 계신다는 전갈이 왔다. 곧장 차를 몰아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주민 여러 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의 아버지 박제근 씨를 그렇게 어렵사리 만났다. 공주시 무릉동 농촌마을 들녘은 눈이 쌓여 흡사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여기까지 왔어? 나는 할 말이 없으니까 찬호한테 가봐. 기왕 왔으니 우리 마을 자랑이나 해줘. 여기가 참 살기 좋거든." 농촌 마을 어디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촌로(村老)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을회관에 트럭을 타고 왔다는 말에서 소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할 장소가 마땅찮아 고민하는데 동네 주민이 "우리 집에서 하면 될 것 아녀”하며 집으로 안내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한 식구 같았다. 박 씨는 주민들과 자주 어울려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고 했다.
수확철이 끝나 요즘은 한가한 모습이었다. "소일거리 겸 건강 겸 밤·은행나무를 가꿔 지인들과 나눠 먹지요." 이야기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찬호 전화인디." 집에 자주 들리느냐는 말에 "찬호가 워낙 바빠 자주는 못 들려. 전화통화는 매일 하는디, 집사람은 아침마다 통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라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박찬호가 올해 두자릿수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야구에 관해서는 밤 세워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정도로 술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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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라 좀 한가하시지요.
"장사는 찬호가 미국에 가면서 그만 둬서, 예전부터 하던 밤나무, 은행나무, 과일농장을 건강삼아 운영하고 있지요. 마을회관에 모여 사람 만나서 얘기도 하고, 소일거리 찾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지역에서 유명세 많이 타셨을 텐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뭐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지금도 농사일을 계속 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랑 무슨 일이든 같이 하기 위해서 소박하게 살고 있죠.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원래 살던 대로 살고 있어요."
-박찬호 선수를 보면 운동신경을 타고 난 것 같은데 원래 아버님께서도 운동에 소질이 있으셨는지요.
"대회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도를 조금 했었죠. 그게 특기라기엔 쑥스럽고, 취미로 즐기는 정도였어요. 사실 찬호는 할아버지를 빼닮아 체격과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워낙 체격도 좋으시고 운동도 잘하셨어요. 찬호가 할아버지를 참 잘 모시기도 했고요. 할아버지 생전에 찬호가 할아버지를 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효를 중시하는 공주의 이미지에 맞아서 여기저기 많이 쓰이기도 했었죠."
-박찬호 선수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운동을 시작했는데 원래 운동을 시키려고 했나요.
"(손사래를 치며)아녀요. 그 당시에는 내가 못한 공부를 찬호에게 시키고 싶었어요. 이 녀석은 공부 쪽으로 키워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초등학교 때 찬호가 특별활동으로 육상을 시작하더라고요. 워낙 찬호가 또래 애들보다 키가 커서 그랬나 봐요. 마침 그때 중동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창설되면서 주위에서 야구 시키면 잘할 것 같다고 권해서 처음에는 반대했었죠. 저는 주위 사람들이나 찬호한테 '운동해서 밥벌이라도 하겠냐,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야구는 수업 끝나고 하는 것 아니냐고 주변에서 권하더라고요.
-주위 권유를 못 이기셨군요.
“사실 그때는 애들이 학교 끝나면 집에 와서 개울에나 놀러 다니고 산으로 놀러 다니는 게 일인데 또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차라리 그렇게 놀거면 사고도 방지하고 단체생활도 해볼 겸 야구를 시켰는데 공도 다른 선수들보다 빠르고, 뜀박질도 빠르다보니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어요. 찬호도 그게 좋았나 봐요. 야구를 꼭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야구를 시킨거죠."
-언제부터 박찬호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던가요.
"원래 초등학교 때까지만 야구를 시키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두드러지더라고요. 그 때 당시 3루수였는데 1루로 송구를 하면 공이 총알같이 가는 거예요. 그 때 감독님이 투수 한 번 해보라고 권하셨대요. 그래서 그 때부터 투수를 시작한 거죠."
-역시 대선수라 일찍부터 실력이 대단했나보네요.
"꼭 그런 것도 아니지요. 저는 찬호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뭐 자기 자신도 노력은 많이 했겠지만 고 2때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하면서 이름이 알려졌죠. 그래도 그때 워낙에 조성민이나 임선동이 같이 대단한 투수들이 많아서 그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뽑혔다는데 우리 찬호는 소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암담하기도 하고 힘도 들고 했는데 운 좋게 가까스로 국가대표로 뽑혀 미국 가서 승리투수도 되고 하면서 미국 스카우터들 눈에 띈 거죠. 노력도 대단하지만 사실 운도 좋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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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선수의 노력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데 운이라뇨. 박 선수의 노력과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이뤄낸 성과겠죠.
"사실 찬호가 야구한다고 나선 당시에는 우리 집이 먹고살기 어려워 물질적 지원도 제대로 못했어요. 이 녀석이 장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돈이 없어서 장어 한 판만 시켜놓고 같이 못 먹고 먹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찬호가 왜 안 드시냐고 물어보면 '나는 느끼해서 장어는 안 먹는다'고 둘러대고, 아들만 먹였죠. 나라고 왜 안 먹고 싶었겠어요. 그래도 아들 먹는 거 보면 행복한 게 부모 마음이라고, 넉넉하게 못 사준 게 오히려 미안하죠. 뭐 별로 해 준 게 없이 혼자 큰 아이라 뒷바라지라고 하면 부끄러워요."
-사실상 운동선수들 뒷바라지가 힘들다는데 역시 아버님도 힘드셨나보네요.
"지금 생각하면 찬호 고등학교 때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뒷바라지를 잘해줬으면 더 큰 선수들이 많이 나왔을 겁니다. 당시 지방은 서울처럼 운동선수 뒷바라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거든요. 뒷바라지는 3박자가 맞아야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선 어느 정도 돈도 있어야 되고, 운도 있어야 되고, 관심도 있어야 되더라고요."
-아드님 야구시킨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셨는지요.
"우선 야구를 해도 대학교를 가더라고요. 한양대를 비롯해 명문 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왔어요. 대학생이 된다니 그게 또 그렇게 좋대요. 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찬호를 데려가겠다고 하니 그 때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찬호 좋은 점만 얘기하면서 거기 팀에서 찬호가 가능성이 높다면서 말이에요. 참나, 그냥 데려가 준다고만 해도 보낼 판에 그렇게 아들 칭찬만 해주면서 맡겨달라는데 내 정신이 아니었죠. 무조건 보내고 싶다고 했죠."
-반대로 힘들었을 때도 있으셨겠지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데 중2때 찬호가 3루수였어요. 그 때 타구에 손목을 맞아 아프다고 해서 찬물에 담그라고 하고 참으라고 했죠. 그런데 당시 부장선생이 전지훈련을 갔다가 찬호 폼이 다르고, 공을 무서워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뼈에 금이 갔다고 깁스를 하고 집에 온 겁니다. 이 녀석이 한참을 모르고 야구를 계속 한 거죠. 안쓰럽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해서 낫고 나서 하지 그랬냐고 원망했는데 찬호가 '그럼 형들이 3루수 차지하는데 아프다고 빠지면 어떡하냐'고 그러대요. 혼자 노력해서 이 같은 결과가 있는 것 같아 안쓰럽고 그래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이번에 입단한 오릭스에서 15승도 기대하고 있던데요.
"내심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하길 바랐는데 찬호는 어차피 야구를 했으니까 지도자를 한다면 한·미·일 야구를 모두 접해봐야 한다고 하네요. 일본에서 잘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일본 야구를 경험해본다는 의미로 간 것이다 보니 승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일본 야구를 배우고 오는 것에 만족해요."
-박찬호 선수가 은퇴하면 무얼 했으면 좋으시겠어요.
"아직 현역인데 은퇴 같은 구체적 얘기를 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야구를 했으니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죠. 어쨌든 찬호의 꿈이 있지 않겠어요? 그냥 찬호의 꿈을 존중하고, 부모지만 내가 관여하기보다는 찬호가 직접 결정하는 거라고 봐요."
-아드님 덕에 뿌듯하시겠어요.
"사실 예전에는 초등학교 야구 전국대회라면 춘·추계리그 두 개 모두 서울에서 했어요. 그래도 찬호 이름으로 리틀야구장도 만들고 해서 공주시에서 전국대회를 유치할 수 있게 돼서 좋죠. 늘 뿌듯하고, 또 찬호가 매년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해주고 해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운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조언 한마디 해 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이에요. 나는 위로와 격려,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찬호도 그게 가장 컸다고 얘기해요. 인간은 기계랑 달라서 좋을 때가 있으면 안 좋을 때도 있잖아요. 특히 안 좋을 때 항상 같이 있어줬어요. '잘하는 애들도 못할 때가 있는 거고 너도 지금은 힘들지만 잘하게 될 수 있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그것이 발전이다'라는 위로와 함께 정신적 지원이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아버님은 따로 계획하신 일이 있으세요.
"내년이면 나이가 70인데 뭐 별거 없어요. 사람만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사람 사는 건데 10년간 지금처럼 아무에게도 누가 되지 않고 동네분들과 어울려 농사도 짓고, 나눠먹기도 하고, 그런 거죠. 무엇보다도 찬호에게 누가 되지 않게 이렇게 살다가 여생을 마치고 싶은 게 소망이라면 소망이죠 뭐."
<논설실장> 정리=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
사진=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한화이글스는 지난 7일 구단사무실에서 류현진과 연봉 4억 원으로 재계약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해 2억 7000만 원보다 1억 3000만 원(48.1%)이 인상된 액수다. 한화 ‘괴물투수’ 류현진은 프로 입단 후 지속적으로 연차별 최고 연봉을 달성했고 프로 6년차 최고 연봉으로 국내 최고 투수로 입지를 굳혔다.
류현진은 이승엽(현 오릭스)이 보유했던 6년차 최고 연봉(2000년 3억 원)기록을 단숨에 넘어섰고 롯데 이대호가 받은 7년차 최고 연봉(2007년 3억2000만 원)까지 뛰어올랐다.
한화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기반은 류현진이 지난시즌 16승 4패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했고 정규이닝 한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과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는 등 리그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류현진과의 협상에서 3억 5000여만 원의 금액을 제시했지만 3차례의 협상 끝에 6년 차 연봉(3억 원) 신기록을 뛰어넘기면서 탄탄한 중심기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류현진은 "올해는 선배들과 함께 젊고 강한 팀이 되도록 노력하고 팀 4강 진입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는 지난시즌 홈런부분 2위를 차지한 최진행을 233.3% 인상된 1억 원으로 8년만에 억대연봉으로 진입했고 나머지 2명(이대수, 마일영)을 제외한 46명의 선수들과 도장을 찍었다.
이주민 기자 sinsa@cctoday.co.kr
6일 대전시, 대전시의회 등에 따르면 시는 '보문산 뉴 그린 파크(NEW GREEN PAR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입한 푸푸랜드(옛 수영장)를 ㈜대전아쿠아월드에 매각키로 하고, 지난해 12월 시의회에 시유지 매각에 대한 동의를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김종천 의원(민주당·서구5선거구)은 이날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시가 10억 원에 매입한 이 땅을 다시 10억 원에 판다는 내용의 매각계획서를 시의회에 제출, 동의를 구했다”면서 “아쿠아월드 개장에 따른 교통 및 주차장 문제에 대한 대안도 없이 2단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반려시켰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어떻게 시가 나서서 특정업체에게 특혜를 주려고 하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면서 “동료 시의원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한 뒤 매각에 대한 시의회의 최종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시의회는 이에 따라 대전아쿠아월드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조사특위'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소관 상임위인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조사 특위' 구성에 찬성 의견을 보였다.
우선 안필응 의원(선진당, 동구3)은 “아쿠아월드 조성과 관련 법적·행정적 편법이 있었는지 점검해야 하고, 지역경제 발전 측면에서 미래적인 개선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재인 의원(선진당, 유성1)은 “아쿠아월드가 오는 15일 정식 개장한 후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곧 시행되는 업무보고에서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거시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정현 의원(민주당, 비례대표)도 “시가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민자사업을 유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치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점이고, 민자를 유치할 때는 정확한 검토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어 “교통대란과 관련 규정상 문제가 있다. 2만㎡ 이하일 경우 면제받는 것은 넌센스다. 교통영향평가는 항상 진행돼야 하고, 앞으로 제도적 보완점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진환 기자 pow17@cctoday.co.kr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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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호반길 6코스의 시작점 추동자연생태공원에 지난 가을에 핀 국화가 얼어붙어있다. 채 지기도 전에 한파로 얼어버린 국화 위로 폭설까지 덮쳤다. 가을을 뒤따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린 국화가 주는 감흥은 애잔하다. 서로 다른 두 계절의 빛깔이 엮는 묘한 조화는 조금씩 희미해지는 지난 가을을 다시 꺼내들게 만든다. | ||
1990년대 중반에 생산된 오래된 승용차는 눈 내린 산하를 가로지르며 콜록댔다. 차는 노면 위 살얼음을 저단 기어로 겨우 헤쳐 나갔다. 한 겨울 빈산의 애처로운 풍경은 며칠 간 내린 폭설에 경건한 모습으로 거듭나 있었다. 차주(車主) 이형규 기자는 풍경을 향해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리 길지 않은 유통기한을 내재한 설산(雪山)의 풍경은 혼자 즐기기엔 다소 적적하다. 자주 보아왔던 풍경임에도 동료의 감탄사가 보태진 풍경은 새로웠다.
1. 얼어붙은 이국적인 풍경
목적지인 찬샘마을로 향하던 자동차는 추동 자연생태공원에서 잠시 멈춰 섰다. 지난 계절 내내 들꽃의 향기와 색으로 들끓었던 공원은 소복이 쌓인 눈과 더불어 고즈넉했다. 공원 내 눈 덮인 풍차와 벤치는 변두리에서 이국을 바라보게 만든다. 평면으로 매끄럽게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몇 달 전 보랏빛 연꽃으로 생글거리던 호수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쌓인 눈 아래 고요하게 얼어붙은 땅이 품고 있을 봄, 여름, 가을 또한 그러했다.
눈 덮인 울타리를 털어내자 얼어붙어 말라버린 노란 국화 꽃잎 몇 개가 떨어졌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국화 축제'가 열렸음을 상기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워야 할 때 아름다워야 아름답다'는 말장난이 목구멍에서 맴돌아 피식했다. 설원 위로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갯짓하며 고요를 갈랐다. 인적 없는 공원은 그렇게 느린 겨울을 견디며 봄을 예비하고 있었다. 차는 다시 찬샘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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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동묘려에서 바라보이는 대청호반은 사람의 눈높이와 맞닿아있다. 손닿을 듯 낮게 깔린 풍경은 어렵게 높이 올라야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달리 편안하다. 관동묘려는 황혼과 친한 장소다. 낙조에 물든 호반에 잔물결이 일면 가슴 찡한 풍경이 진양조 장단으로 눈에 든다. 대청호반길의 비경이라 할만하다. | ||
2. 느린 길을 품은 고요한 마을
대청호반길 3코스의 기점인 찬샘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특히 얼마 전 '1박2일' 멤버들이 하룻밤 묵고 간 뒤 마을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며칠간의 폭설 탓에 시내버스마저 막힌 마을은 적막했다.
지난해 4월, 대전시는 대청호와 인접한 동구와 대덕구 일부 지역에 대전판 '올레길' 대청호반길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 길은 6개 주요코스 및 11개 세부코스로 조성된 59㎞ 길이의 생태탐방로와 3개 코스로 조성된 26.6㎞ 길이의 자전거 탐방로로 이뤄져 있다. 저 멀리 제주 땅을 순례자처럼 걷는 이들을 부러워했던 지역민들이 하나 둘씩 혹은 무리지어 대청호반길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청호반길은 빠르게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아갔다.
3코스는 2개의 세부코스로 나뉜다. 첫 번째 세부코스는 찬샘마을에서 노고산성을 거쳐 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3㎞ 길이의 순환코스로 약 1시간여가량 소요된다. 특히 노고산성은 대청호반길의 대표적인 해맞이 명소로 매년 1월 1일이면 새해의 신령한 기운을 받으려는 방문객들로 부산하다. 또한 코스 중간에 위치한 찬샘정은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너른 호반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유명하다. 두 번째 세부코스는 찬샘마을에서 노고산성을 거쳐 성치산성으로 이어지는 3㎞ 길이의 코스로 약 4시간 반가량 소요된다. 성치산성은 청남대가 바라보이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대청호라는 훌륭한 자연적 인프라에 기대어 조성된 걷기 코스답게 코스의 상당 구간이 호수와 맞닿은 대청호반길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걸음을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호반의 모습은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듯 애태우며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나 길은 길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 주변 풍경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같은 시각적 효과는 기존의 길에 이정표만을 세우는 등 최소한의 개발을 선택한 까닭이다.
호반 인근에 자리 잡은 마을과 인접한 코스로 다가갈수록 이러한 배려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곳 마을들은 행정구역상으로만 대전이라는 대도시 품안에 안겨있을 뿐이다. 여전히 오래전 외진 마을의 모습과 삶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바뀐 것이라고는 주민들의 나이가 전부다. 오래전 생생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생생하지 않은 지금도 그들만의 삶을 의식처럼 이어가고 있다. 길 위를 걷는 노인들의 발걸음에는 서두름이 없고 경운기는 노인들과 속도를 다투지 않는다. 걷기 코스라기보다는 생활공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을의 흙길과 농로는 주민들의 느린 삶과 닮아있어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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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호반길 6코스 초입에 위치한 추동 자연생태공원. | ||
2. 수몰민들의 망향정
고향은 먼 곳에 있다. 가까운 곳에 있어도 먼 곳에, 먼 곳에 있어도 먼 곳에 있다. 타향에 머물고 있는 한 고향은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먼 산 너머에 깃든 그리운 작은 마을이다.
타향살이의 시름이 깊어질 무렵이면 가장 먼저 되살아오는 것은 향수(鄕愁)다. 향수의 증상은 열병과도 같다. 짐작키 힘든 먹먹함이 가슴을 조인다. 먼 곳을 가까이 당겨 보고자하는 환자들의 눈가에 핏발이 선다. 꿈속에선 집 앞 골목길을 헤맨다. 명절 귀향길은 열병을 치료하기 위한 사후약방문일지도 모른다. 황금빛 들녘 없어도 귀향길은 풍요롭다. 고향은 추워도 따뜻하다. 귀향은 다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여행이다.
인간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연어의 경이로운 귀소본능에 다름 아니다. 살아서는 서울 물을 먹고자 하나 죽어서는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소박한 바람 아니던가. 높다란 계단식 어도를 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연어의 마음과 휴전선을 따라 늘어선 망향정(望鄕亭)에 올라 닿을 수 없는 북녘하늘을 매만지는 실향민의 마음은 등거리다. 그러나 어도가 낮아져도, 통일이 이뤄져도,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수몰민들이다.
대청호반길 3코스의 첫 번째 세부코스를 1.2㎞ 남짓 걸어 오르면 대청댐 수몰민들의 망향정, 찬샘정이 보인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대청호 물비늘이 겨울바람에 부서져 반짝인다. 눈앞에 호반이 차오르자 수면 위로 섬이 하나둘씩 솟아올라 다도해를 이룬다. 그 모든 것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에 찬샘정이 서있다.
찬샘정에 올라 내륙의 다도해를 바라본다. 이제는 섬으로 불리는 오래전 언덕들… 수면 아래로 실향민 아닌 실향민들의 가없는 그리움이 잠겨있다. 그리움은 섬 하나하나마다 사금파리마냥 흩어져있다. 수몰민들은 이곳에서 사금파리들을 모으다 지쳐가고 사금파리들은 추억돼 흩어져간다. 수몰민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그리움은 정자 옆 시비로 남아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는다.
"산도 좋고 물도 좋은 내 고향 냉천 땅에서
괭이 들고 땅을 파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 '추억에 그 세월을' 中
벗겨진 구름 따라 시린 하늘 문이 열린다. 찬바람 속에서 겨울 햇살이 은근한 따스함으로 살갗을 파고든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호반을 향해 늘어선 수많은 무덤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한 무덤 앞의 눈 덮인 조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살아서는 되올 수 없는 사랑의 그리움에 사무쳐 호반을 찾아오고, 죽어서는 호반 언덕에 누워 물밑 고향을 향하고…
사랑은 그리움 향한 미련함의 절정이다.
3. 비경은 관동묘려에

높은 곳에서 굽어보아야 하는 대청호의 풍경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마냥 달려들기 쉽지 않다. 너른 수면과 사람들 사이에 놓인 사면(斜面)은 유리벽처럼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경계 아닌 경계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높이 올라야만 바라보이는 것을 허락하는 호반은 광활하나 어딘지 모르게 어렵다.
찬샘정에서 냉천길 자전거 코스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중 왼쪽으로 뚫린 샛길을 따라 1㎞가량 들어가면 몸을 낮춘 호반의 풍경이 시야로 드나드는 관동묘려다.
낮게 깔린 호반의 나른한 풍경은 한겨울에도 여전했다. 풍경과 사람들 사이에 놓은 경계는 빈 밭과 허수아비뿐이어서 낮은 수면이 움켜쥘 수 있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갑작스런 불청객의 방문에 놀란 오리 떼들이 허둥지둥 날갯짓하며 일렬로 수면을 갈랐다. 왜가리와 백로 몇 마리가 오리 떼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게으른 날갯짓으로 옆 봉우리로 향했다. 수면 위로 쏟아진 오후의 짧은 햇살이 잔물결 속에서 쪼개져 빛났다. 붉은 기운 감도는 공기 속에서 관동묘려의 겨울 풍경은 수묵담채화다. 사람과 눈높이를 맞춘 호반은 편안하다.
저마다 기호의 차는 있겠으나, 대청호반 걷기코스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중 으뜸은 단연 관동묘려다. 동동주 한 사발 생각이 간절했지만 관동묘려의 유일한 음식점 '할먼네집' 대문은 강추위에 자물쇠로 굳게 얼어붙어있었다. 군입을 다시며 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동묘려의 봄은 흩날리는 벚꽃잎으로 가득하니 기다림이 길어도 아쉽지 않다.
군입은 관동묘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옥천 방아실 회타운에서 다셨다. 겨울철 방아실은 대청호에 기댄 제철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미나리와 배, 참기름, 초장으로 버무려진 향어회가 입안에서 찰지게 씹힌다. 우러날 대로 우러나 기름 동동 뜬 매운탕 국물이 찬바람 들어간 속을 데운다. 제철 맞은 빙어 튀김의 고소함은 깨가 서말이다.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 맛이다.
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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