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물가와 가계소득 위축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전업주부들이 급증하고 있다.

17일 잡코리아가 최근 5년간 자사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사이트(알바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주부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는 4.8배, 주부 아르바이트 이력서 등록은 5.5배 증가하는 등 주부들의 구직열기가 뜨거운 것으로 나타났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상반기 동안 알바몬에 등록된 35세 이상 여성의 신규 이력서는 총 2만 4480건으로 월평균 4080건이 새롭게 등록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8935건에 비해 1.3배 증가한 것으로 특히 4년 전인 2007년 상반기 4421건과 비교하면 무려 5.5배가 증가한 수치다.

주부들의 아르바이트 구직열기와 함께 주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수요 역시 크게 증가했다.

알바몬 주부 전용 채용관 채용공고는 지난 2007년 상반기 9만 3991건에서 올해 상반기 44만 7572건으로 불과 5년 사이 무려 4.8배 급증했다.

직종별은 고객상담·회원관리가 6140건으로 가장 많았고 매장관리·판매(6121건), 생산·제조·가공(5709건), 기능·생산·노무(5592건), 유통점·마트(5174건) 직종이 차례로 5위권에 올랐다. 또 포장·단순노무(3967건), 서빙·주방(38

89건), 텔레마케팅(3225건), 전화주문·접수(3015건), 사무보조(28

75건) 등도 비교적 주부 채용이 활발한 직종으로 꼽혔다.

그러나 주부모집이 활발한 이들 상위 10개 직종 중 시간당 평균 급여가 6000원이 넘는 직종은 텔레마케팅(6448원) 직종뿐이었으며 나머지 대부분 직종은 시간당 5000원 내외로 나타났다.

특히 매장관리·판매(4950원)와 생산·제조·가공(4932원) 직종은 시간당 평균 급여가 5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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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 충남 당진 우강면에 조성된 솔뫼성지. 성경책을 들고 우뚝 서있는 순교자 동상 뒷편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뛰어놀았던 어린시절 김대건은 25살의 순교를 상상이나 했을까.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 드넓은 평원에 사시사철 솔바람이 부는 언덕이다. 대숲과 송림이 우거진 언덕에 오르면 멀리 삽교천까지 볼 수 있는 곳. 빽빽하게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사이에 한 사람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이 동상은 한국 최초의 신부 '피의 순교자' 성(星) 김대건 안드레아다.

지난 5일은 한국 천주교 내 큰 행사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이었다.

◆한국 천주교의 출발지, 솔뫼

솔뫼성지는 김 신부가 태어난 곳이자 일가 4대가 머물렀던 곳이다. 부끄럽게도 이곳의 성지화는 외국인 신부에 의해 먼저 이뤄졌다. 1906년 합덕본당(현재의 합덕성당)의 외국인 신부가 지금의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1945년, 또 다른 외국인 신부가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일반 교인들이 공경할만한 대상이 됨)'를 설립했다. 이로써 김 신부는 준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84년 방한한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됐다.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솔뫼성지를 가꾸기 시작한 것은 1946년부터다. 대전교구가 순교 100주년 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조성이 본격화 됐다. 이어 대전교구는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 1982년에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해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다.

2004년에는 김 신부의 생가가 복원됐다. 생가는 65㎡(약 19.8평)로 대청마루와 안방, 건넛방과 부엌으로 구성돼 있다.

2005년에는 4만 4743㎡의 기념관과 성당이 건립됐다. 기념관의 타원형 외관은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으로 김 신부가 중국에서 입국할 때 탔던 '라파엘호'의 모양에서 따왔다. 건물을 둘러싼 외벽은 김 신부가 자주 왕래하던 서해를 상징한다. 또한 외벽은 바깥 공기와 만나면 적갈색으로 변화하는 강판을 사용해 순교자의 피를 형상화했다. 사다리꼴 모양의 건물 입구도 재미있다. 사다리꼴의 특성상 위로 갈수록 문이 좁아지는데, 이것은 천국의 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건물은 지상2층으로 성당과 전시관이 마주본다. 성당은 250명이 한 번에 미사를 볼 수 있다. 제대(신부가 미사를 진행하는 곳)의 오른편에는 김 신부의 초상화를 배치해 마치 그가 직접 미사를 참관하는 듯한 효과를 낸다.

전시관은 한국 천주교와 김 신부의 기록물로 꾸며져 있다. 입구에는 김 신부의 연대별 흉상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명동성당에서 제작한 흉상이다.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팀이 이 흉상을 복원했다. 김 신부의 얼굴 뼛조각을 토대로 19세기 남성의 얼굴 윤곽에 맞춘 청동 모형이다. 이 외에도 연대별로 흉상이 마련돼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흉상을 지나치면 천주교의 4대 박해에 대한 아픈 역사와 만날 수 있다.

정약용 등 진보적 사상가 400여 명이 유배되고 100여 명이 참수 당했던 신유박해(1801), 천주교 박해를 권력쟁취에 이용한 기해박해(1839), 김 신부 등 9명이 처형된 병오박해(1846). 프랑스인 선교사 9명과 양민 8000여 명을 처형한 병인박해(1866)가 그것이다. 특히 병인박해는 프랑스에 알려져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로 침입(병인양요)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시관은 1960년대 대전교구의 주보, 김 신부의 라틴어 서한문 등을 전시하고 있다.

◆순교로 매듭진 삶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을 제일의 성지로 꼽는 이유는 단연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 때문이다. 그는 1821년 태어나 1846년 만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그는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용인 한덕동으로 거처를 옮긴 일곱 살까지 이곳 솔뫼성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가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종교를 향한 굳건한 신념과 그의 집안 내력 때문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이래 4대에 걸쳐 입교해 32년간 10명의 순교자를 냈다. 그중 자신과 아버지, 당고모 3명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 신부는 생전에 총 31통의 서한을 작성했다. 그 중 9통이 압수돼 수취인에게 전달 된 것은 22통에 불과하다. 조선인 최초의 서양 유학생이었던 김 신부는 라틴어와 불어 등에 능통했다.

그래서인지 22통의 서한 중 1844년 '훈춘 여행기'와 1846년 옥중에서 작성한 '마지막 회유문'을 제외하곤 모두 라틴어로 쓰여 있다.

이 라틴어 서한문들에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김 신부의 지기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846년 6월 20일, 그는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이 관가에 발각, 좌포청(左捕廳)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다.

판관과 형리들이 심문도중 라틴어 서한문의 내용을 추궁했다. 서한의 내용은 스승인 페레올 주교와 포교에 관해 이야기 한 것이었다. 관리들은 필체가 다른 것을 추궁하자 김 신부는 "철필(鐵筆·PEN)을 가져다주면 한 사람이 다른 글씨체를 쓰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 철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대신 누군가 새 깃을 가져왔다. 김 신부는 뾰족하게 깎아 가는 글씨를 쓴 다음 끝을 뭉뚝하게 잘라 굵은 글씨를 보였다. 두 글씨의 모습이 다르자 관리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박해의 주역이었던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세도가 몰락했다. 이와 맞물려 김 신부가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사실도 조정에 알려졌다. 그는 조정의 명을 받아 옥중에서 세계지도와 지리서 등을 번역했다. 이때까지는 삶의 희망이 보이는 듯싶었다. 그러나 곧 프랑스가 군함을 파견해 기인박해때 자국의 신부 7명을 죽인 일에 항의, 관리들 사이에 다시 천주교인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김 신부는 그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 당하고 말았다. 그가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은지 1년 1개월이 되던 때다.

올해는 김 신부의 탄생 190주년, 순교 165주년이 되는 해다.

김 신부가 솔뫼에서 뛰놀던 시절에 다가올 순교의 운명을 예감이나 했을까. 그의 스물다섯 해의 삶을 잠시나마 엿보며 나의 삶을 반성한다. 오늘 우리에게 순교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길의 끝은 어디인가. 길 위로 점점이 흩뿌려진 순교의 피 흘린 자취는 은하수처럼 멀고도 아련하기만 하다.

솔뫼성지(당진)=이형규 기자 knife402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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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요일 도서관에 갔는데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기가 막힐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청주시내 일선 주민자치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방치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등록증이나 발급해 주는 곳이 아니다. 주민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평생교육장이다. 이웃과 단절하고 사는 도시민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측면도 중요해서 주민자치센터로 명칭도 바꿨다.

이를 위해 청주시는 2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10개 자치센터 건물을 전문교육시설을 능가할 정도로 잘 지었다. 30개 주민센터 중에서 시설이 노후하거나 협소해서 주민센터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10개소를 우선 신축했고, 나머지도 연차적으로 신축할 계획이다.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1·2, 우암동, 성안동, 탑·대성동, 용담·명암산성동 등이 모두 최근에 신·증축됐으며, 3~4층 규모의 건물을 짓는데 15억~30억 원이 들었다. 최근에 신축한 주민센터는 노래, 외국어, 서예, 풍물, 수지침 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댄스스포츠, 요가, 탁구 등 체육도 즐길 수가 있다.

문제는 일선 주민센터들이 야간이나 토·일요일 등 직원들이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는 문을 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상우 시장 시절인 200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주민들이 항의하는 등 민원이 제기되자 야간·휴일에도 개방하는 원칙을 확립한 바 있다.

민선4기동안 잘 지켜지던 개방원칙이 한범덕 시장 취임이후 청사보안, 에너지 절약 등을 이유로 개방하지 않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현재 개방하는 곳은 4곳에 불과한데 비해 개방하지 않는 곳은 무려 26곳이나 돼 압도적으로 많다. 인근 주민센터에서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하던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근에 훌륭한 공익시설을 두고 먼 곳에 있는 영업시설을 찾아가야하는 불편이 심각한 데다 경제적인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민센터의 탁구교실을 이용하는 데는 월 1만 원의 회비만 내면 되지만 사설탁구장을 이용하자면 매월 3만~5만 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를 항의하기 위해 찾아 가면 동장, 구청장 등이 책임을 전가하다가는 주민자치위에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다. 실제로 상당구 우암동 탁구회원들은 지난 4월 15일 동장을 찾아가 휴일 개방을 요구하다가 망신만 당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휴일 개방을 하지 않는 것은 동장의 방침이니 문제 삼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자꾸 문제를 삼으면 신규 회원 중심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겠다”고 위압했다. 이 말은 기존회원들의 이용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뜻으로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이 청사보안에 문제가 있으면 뒷문으로라도 드나들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쥐새끼처럼 왜 뒷문으로 드나드느냐”고 희롱하기도 했다. 이에 격분한 일부 주민들이 동장과는 더 이상 대화가 안 되겠다고 판단, 이 지역출신 청주시의회 김명수·황영호 의원 등에게 부탁해서 상당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 자리에서 구청장에게 주민센터의 개방을 요구했으나 “주민자치위를 소집해서 논의토록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 채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이후 5월초에 이어 두차례나 주민자치위가 열렸지만 주민을 위한 편익시설인 주민센터의 개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일자로 부임한 윤기민 상당구청장은 “각 동마다 여건이 다른 만큼 주민자치센터의 주말 개방 여부는 각 동주민센터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며 “다만 현재 진행중인 한범덕 시장의 동순방에서 주민들로부터 주말개방 요구가 있었던 지역에 한해서는 이를 반영토록 지시받아 향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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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올라온 글로 인해 충북교육계가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그러나 사실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 진위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14일 오전. 충북도교육청에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유인 즉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 때문이었다.

한 인터넷 포털에 지난 13일 '충북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의 내용은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 2명이 같은 학교 하급생 3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을 쓴 네티즌은 "친구 학교에서 지난 9일 남학생 3명이 학교 4층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 3학년 여학생 2명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성폭행당한 여학생 중 1명은 수치심을 느껴 자해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친구 말에 의하면 4층은 교무실과 멀어서 자율학습 감독이 허술한 편"이라며 "뒤늦게 화장실과 계단에 피가 얼룩진 것을 보고 학교 측은 상황 수습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해당 학교에서는 학교 위신이 추락할까봐 사건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며 "학생과 교직원들의 입을 철저히 막고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단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관련 보도가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린다"며 "이 사건이 묻히지 않고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일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되면서 충북도교육청은 청주시내 인문계 학교중 남녀공학인 9곳의 학교에 대해 탐문을 벌였지만 이같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과 상황이 맞는 청주시내 학교 등에 대해 탐문조사를 했지만 이같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다"며 "충북지방경찰청에 IP조사를 의뢰한 상태로 조만간 사실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사실일 경우 가해자 처벌은 물론 이 일을 방치한 학교도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홍순철·고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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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한 대가로 땅을 하사받은 친일파는 후손이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었더라도 반민족행위자에 해당돼 후손이 보유한 재산의 국가귀속은 당연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최병준 부장판사)는 14일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5촌 조카인 홍모 씨가 "홍명희 선생의 조부 홍승목의 친일행각은 인정하지만,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한 만큼 그를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홍승목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로 임명됐고 1918년 그 연유로 해당 부동산을 취득한 점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면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히 ‘친일행위를 한 당사자가 후에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일제로부터 받은 작위를 반납했을 경우 반민족행위자에서 예외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홍승목의 아들과 손자가 독립운동을 한 만큼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홍승목의 아들 홍범식이 금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자결해 순국한 사실, 손자 홍명희가 상하이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충북 괴산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한 사정만으로는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법원이 친일행각을 벌였던 당사자가 이를 뉘우치고 독립운동을 했을 경우에만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을 엄격히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또 "각 부동산에 홍승목의 조부와 부, 아들의 묘가 설치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 사실만으로 친일재산 추정을 복멸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홍승목이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해 4월 16일 홍승목 소유의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일대 땅 51만여 ㎡에 대한 국가귀속 결정을 내리자, 후손인 홍 씨는 지난해 9월 청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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