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유한식 연기군수, 연기군의회 의원, 과학벨트사수 대책위와 지역 주민 등 300여 명이 세종시 충청 입지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기=황근하 기자  
 

500만 충청인의 염원이 담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충청입지 사수를 위한 함성이 세종시에 또 한차례 울려퍼진다.

과학벨트 대선공약이행 범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4시 행정도시건설청 앞에서 염홍철 대전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등 충청권 시·도지사와 지역 출신 국회의원, 충청권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지역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벨트 사수를 위한 범충청권 비상결의 및 선포식’을 개최한다.

대책위는 이날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대선공약으로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을 약속해놓고, 이를 파기한 채, 전국을 대상으로 입지를 선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결과로 엄청난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대책위는 또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를 약속한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다른 지역을 입지로 선정하거나 나눠먹기식으로 분산배치를 한다면 탈락지역의 심각한 반발과 국정혼란, 국민갈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500만 충청인의 염원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정부에 최후 통첩함으로써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이라는 대선공약 이행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다짐한다.

대책위는 특히 “과학벨트 입지는 대선공약 대로 세종시를 비롯한 충청권으로 결정하는 것이 순리이자 해법”이라며 이날 과학벨트 사수를 위한 500만 충청인의 비상결의·선포문을 채택, 발표한다.

앞서, 유한식 연기군수와 연기군의회 의원, 과학벨트사수대책위 등은 12일 오후 2시 연기군청 현관에서 지역 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시 입지 약속이행’ 촉구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한식 군수는 이날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함으로써 심각한 국론분열로 치닫고 있는 상태”라며 “입지평가위원회가 세종시를 배제시켰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8만여 연기군민과 500만 충청인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군수는 또 “과학벨트는 세종시나 충청권의 발전을 위해 계획된 사업이 결코 아니고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공약된 국책사업”이라며 “정치적 이해관계나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거나, 지역적 안배차원에서 분산배치할 경우에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인문 기자 nanews@cctoday.co.kr

연기=황근하 기자 guestt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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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지역 정치지형 변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증설 및 신설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다만 국회의원 지역구 증설 등은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다 일부는 헌법관련 사항이어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구 신·증설 문제는 주로 대전·충남 지역에 한해 있는데 대전과 천안 지역의 증설과 세종시의 신설 등이 초점이다. 대전의 경우 현행 지역구 6석은 규모가 비슷하거나 적은 광주(8석), 울산(6석) 지역에 비해 의석수가 적어 1석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전 지역구 증설은 이번 18대 국회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는 점에서 차기 국회에선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전 정치권도 이 문제를 초당적으로 거론하고 있어 지역구 증설이 현실화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충남 천안 지역의 의석 증설도 관심사다. 천안의 경우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분구 등을 통한 의석 증설이 검토된 바 있는데 그 이후에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현행 2석을 3석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종시의 경우에는 국회의원 지역구 신설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광역시인 세종시가 내년 공식적으로 출범함에 따라 이 지역에 새로운 지역구가 생겨야 한다는 논리다.

세종시 지역구가 신설될 경우 각 정당은 세종시의 상징성 때문에 당력을 총동원해 이 지역을 공략할 것으로 예상돼 총선의 핫코너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 하반기에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구성해 선거구를 확정할 예정이어서 충청권 선거구 증설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충청권 지역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지역 이익을 대변할 목소리가 커지겠지만 타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얻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김종원 기자 kj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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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야간 행군을 마친 훈련병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군 의료체계 부실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12일 육군훈련소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 20㎞ 야간행군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훈련병 A(23) 씨가 고열 증세를 호소하다 하루 만에 숨졌다.

훈련소 측은 23일 오전 3시 40분경 A 씨를 연대 의무실로 데려갔으며 고열(38도 이상)이 아니라고 판단, 해열제 2알을 처방한 뒤 돌려보냈다. 이후 증세가 악화된 A 씨는 23일 오후 훈련소 지구병원을 거쳐 대전 건양대병원으로 후송됐지만 24일 오전 7시경 숨을 거뒀다.

건양대병원은 A 씨의 사인을 뇌수막염과 패혈증에 의한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훈련소 측이 고열증세를 호소하던 A 씨를 조금 더 일찍 큰 병원으로 후송했다면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뇌수막염을 앓고 있던 A 훈련병을 환자로 분류하지 않고 행군을 진행했던 점 등 훈련병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훈련소 관계자는 “23일 새벽 의무실로 갔을 때는 군의관이 퇴근한 후였고 38도 이상만 고열로 판단하는 만큼 해열제를 처방한 것”이라며 “지구병원에서 피검사를 한 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 외부 병원으로 후송했으며 뇌수막염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육군훈련소는 A 씨에 대해 공상처리 한 뒤 지난달 26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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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실저축은행에 대한 매각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충북지역 하나로저축은행의 매각설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중 부산저축은행 등 모두 9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매각 입찰공고와 함께 저축은행중앙회가 인수한 하나로저축은행의 매각설도 업계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중앙회는 아직 재정상태도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한 하나로은행의 매각설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중앙회, 하나로저축은행 인수 배경

저축은행중앙회는 전임 대주주의 불법 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회수지연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하나로은행을 11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인수했다. 중앙회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일선 저축은행을 인수한 것은 하나로은행이 처음으로 업계에서는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12일 지역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중앙회가 부실저축은행 인수를 위해 출연한 자금은 1100억 원 정도로, 하나로은행과 같은 시기 부실 경영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전주 전일저축은행을 놓고 공적자금 투입 여부를 저울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로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전일저축은행의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경영정상화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하나로은행을 전격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로은행의 전신인 하나로신용금고 시절 신충북상호신용금고와의 계약이전으로 청주 남문로지점과, 충주지점을 개점했을 때다. 당시 하나로은행은 중앙회로부터 지점 개점 등을 위해 필요한 415억 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1월까지 255억 원만 변재하고, 160억 원의 채무가 남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중앙회에서는 하나로은행의 부실사태가 불거진 후 은행이 매각되면 남은 채무액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직접 인수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영업망 확장~가치 상승 땐 매각 가능

일각에서 하나로은행의 매각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최근 저축은행들에 대한 인수·합병(M&A) 분위기와 오는 6월 저축은행 결산을 앞둔 상황에서 실적 악화가 우려됨에 따라 자금 확보가 우선 시 돼야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들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직 은행의 재정 상태가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하나로은행을 매각한다고 해서 중앙회가 초기 인수자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겠냐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특히 매각이 이뤄지더라도 시장에 매물로 나온 저축은행이 9곳이나 되는 상황에서 하나로은행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 관계자들의 반응이다.게다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인한 저축은행들의 인수·합병 분위기도 현재 하나로은행에서 감지되지 않고 있다.

실제 오는 6월말까지 중앙회는 하나로은행의 지점을 서울과 수원, 인천, 부산지역에 추가로 늘릴 방침이다. 이는 하나로은행이 충북금융시장의 열악함을 인식해 전국적인 영업망 확대를 통한 사업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중앙회가 하나로은행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면 굳이 지점 확장을 현 시점에서 할 필요가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지역업계 관계자는 "중앙회도 지금 상황에서 하나로은행을 매각해 그동안 투입된 공적자금을 전부 회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하나로은행의 경영이 완전 정상화 되고 가치가 올랐을 때 매각하는 것이 중앙회 입장에서도 더 남는 장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중앙회에 자금을 출연한 일부 저축은행 업계에서 하나로은행의 매각 여부에 대해 얘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의견 제시일 뿐 구체적인 매각 계획에 대한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향후 하나로은행이 완전 정상화 되고 자본력과 규모를 갖춘 큰 대기업 등에서 매입 의사를 밝혀왔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현 기자 cooldog7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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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마른 봄이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자리에 다시 신록의 축복이 넘쳐난다. 지금 중묵리 소나무 숲에선 죽어서 쓰러진 것들의 묵은내와 새롭게 피어난 것들의 풋내가 지나간 봄비의 물비린내 속에 비벼져 어수선하다. 이러한 어수선함이야 말로 건강함의 증거다. 중묵리 소나무 숲은 지금 척박함을 딛고 일어서 다시 신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지난 2002년 4월 14일 오후 1시께, 충남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의 산 124번지 임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때 마침 불어온 순간 최대초속 15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강풍의 이동 방향은 능선과 일치했다. 초동진화의 손길보다 불길을 등에 업은 강풍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불은 능선을 잇대어가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비산해가며 곳곳에서 덩치를 불렸다. 봄볕에 잘 마른 지난 계절의 낙엽은 흙으로 되돌아가기도 전에 불쏘시개로 타올라 모목(母木)을 덮쳤다. 숲의 주된 수종은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였다. 덜 탄 재는 바람을 타고 도로와 하천을 가로지르며 되살아났다. 불은 손 쓸 새도 없이 민가 뒤뜰까지 밀려들어와 철썩거렸다. 대대로 살아온 터가 불 속으로 쓸려 들어갔지만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불은 불과 네 시간여 만에 발화지점서 20여㎞ 떨어진 곳까지 당도했다. 불의 이동속도는 사람의 평균 걸음걸이 속도보다도 빨랐다. 마을 하늘엔 마른 먹구름이 짙게 일렁여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산림청 헬기 3대, 공무원·의용소방대원·군인 등 1000여 명이 진화에 긴급 동원됐지만 불길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불길은 불 보듯 뻔해도 사람이 답보할 순 없는 길이었다. 15일 새벽, 소방당국은 날이 밝자 헬기 15대와 2800여 명을 추가 투입했다. 고단한 진화작업 끝에 이날 오전 8시 30분께서야 겨우 큰 불길이 소방당국의 통제권에 닿았다.
 

   
▲ 숲에 들어서면 오래전 화마의 상흔, 헐거움과 조밀함의 대비가 여전히 선명하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18일 청양경찰서는 '천년보살'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던 무속인 김 모 씨(52·여) 에게 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청양경찰서에 따르면 '천년보살'은 의뢰인 이 모 씨(45·여)의 부탁을 받아 이 씨 부모의 묘소에서 제를 올린 후 부적을 태워 날려 보내다 불을 냈다. 충남 도정 사상 최대의 산불의 화근은 이토록 사소하고 어처구니없었다.

군계(郡界)를 넘어 예산까지 삼킨 불은 4개 면, 29개 리에 걸쳐 임야 3095㏊를 태웠다. 소와 돼지를 비롯한 수많은 가축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주인 없는 축사에서 타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산토끼, 고라니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하기만 할 뿐 기력을 소진한 나머지 다리 근육에 힘을 주지 못했다. 8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90여억 원의 재산 피해가 집계됐다. 인접 생태계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도 화폐 단위로 짐작되지 않는다. 산림법 제120조는 '과실로 산림을 소훼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천년보살'이 천 년간 살아서 매년 벌금을 갖다 바쳐도 어림없는 피해 규모였다.
 

   
 

이후 피해 지자체들은 무너진 산림 복구에 사력을 다했다. 지난 2000년 봄, 동해안 5개 시·군에 걸쳐 2만 4000여㏊를 태운 '단군 이래' 최대의 산불에 덴 중앙 정부도 부랴부랴 복구 지원 예산을 보탰다. 피해 면적 가운데 36%(1129㏊)는 자연복원, 64%(1966㏊)는 인공복원 과정을 거쳤다. 인공복원 지역엔 2003년부터 4년 간 1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 20개 수종 336만 본이 식재됐다. 급경사 피해 지역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 등 장기 활엽수를 중심으로 조림됐다. 나무를 심기 어려울 정도로 급경사인 지역엔 종자가 뿌려졌다. 완경사 피해 지역은 산수유, 밤나무 등 유실수로 조림돼 향후 주민들의 경제적·물적 토대의 확보를 도모했다. 그렇게 숲은 다시 숲의 꼴을 갖춰나갔다.

산불 발생 이래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발화점이었던 중묵리에서 마을 숲의 아름다움을 묻는 일은 여전히 민망하고 한가한 일이다. 이름을 묻기도 전에 집 현관문 안으로 돌아섰던 한 주민은 "중묵리엔 마을 숲이 없다. 10년 전 모두 타 버렸다. 산불은 당시 집 뒤편까지 치달았다.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고 단문으로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 주민의 집 뒤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주민의 단문으로 이뤄진 대답 속에서 숲은 아득히 멀어보였다. 단문이 다음 단문으로 건너가는 시간이 서늘했다. 그 시간 속엔 당시 집 뒤편까지 치달았다던 불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깊게 패어있는 듯했다.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는 말은 그 주민만의 심정은 아닐 터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숲에서 산불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민가로 이어지는 길에서 숲과 산을 바라보면 헐거움과 조밀함의 대비가 여전히 선명하다. 당시 산불로 땅속 유기물 층까지 타버릴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의 토양은 지금도 맨흙이 들떠 바스락거릴 정도로 척박하다. 상대적으로 덜 타 비교적 온전히 나무들을 보전한 숲에서도 밑동 그을린 나무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 산불 발생 이듬해인 2003년 4월 14일,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꽃을 피웠던 진달래. 충청투데이DB

그러나 절망의 자리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자리로 거듭나고 있다. 산불 발생 이듬해 봄부터 진달래가 타버린 땅위에 꽃을 피워냈다. 덜 탄 나무는 타다 남은 쪽으로 붉은 새순을 돋아냈다. 봄 햇살 자글거리는 척박한 땅에선 제비꽃, 할미꽃 등 야생화를 비롯한 초본식물들이 잔뿌리로 마른 흙을 움켜쥐었다. 인공조림 지역에 교두보를 박은 소나무 묘목들은 왁스를 바른 듯 기름진 여린 잎새를 반짝였다. 숲 외곽 볕 잘 드는 곳에선 철쭉이 붉은색과 보라색 사이를 파고들어 봄 햇살을 튕겨냈다. 새들이 저녁 숲으로 되돌아가자 산토끼, 고라니도 뒤를 이었다. 숲은 그렇게 조금씩 산불 이전의 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다.

성마른 봄이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자리에 다시 신록의 축복이 넘쳐난다. 지금 중묵리 소나무 숲에선 죽어서 쓰러진 것들의 묵은내와 새롭게 피어난 것들의 풋내가 지나간 봄비의 물비린내 속에 비벼져 어수선하다. 고사목 그늘 아래 빈곤한 자리에 각시붓꽃이 보랏빛 앙증맞은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렸다. 고사목의 수피(樹皮)는 검게 젖어있었다. 도저히 불붙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수피를 매만지자 오래된 그을음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산불은 열의 아홉이 인재다. 반성이란 늘 후불제일수밖에 없는가? 올해도 숲은 다시 살아서 돌아오고 사람들은 반성을 거듭하고 있다.

청양=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 각시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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