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이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대전지역 태양광 산업도 유탄을 맞고 있다. 태양광 관련 업체인 웅진그룹 자회사인 웅진에너지가 현재 가동 중인 대전 제1, 2공장에 이어 사업 확대를 위해 추진했던 3공장 건립이 사실상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 외에도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 등 2개 계열사의 영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업계에서도 모기업의 법정관리로 자금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태양광 분야가 여전히 불황인데다 신용등급 하락까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돼 제3공장 건립 등 신규 사업 추진 중단뿐만 아니라 향후 기업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웅진에너지는 2010년 대전시와 대덕특구 입주를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대덕테크노밸리 내 태양광 발전용 제3공장 건립을 추진해왔다.

제3공장은 50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태양광 전지의 핵심소재인 잉곳(ingot·태양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녹여 결정으로 만든 것)과 웨이퍼(wafer·반도체를 만드는 토대가 되는 얇은 판)를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웅진에너지는 131억 원의 예산으로 유성구 탑립동의 부지 3만 3058㎡를 매입했고,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와 지난해 7월 입주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장 건립 과정을 진행해왔다.

웅진에너지는 제3공장 건립을 위해 올해 213억 원을 집행하는 등 오는 2014년까지 대규모 생산시설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었으나 지난 2월 웅진코웨이 매각 발표에 이어 지주회사의 법정관리까지 겹쳐 5000억 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대전 제1, 2공장에 이어 3공장을 건설,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힌 태양광 산업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려던 웅진에너지의 계획은 보류됐고, 태양광 산업 육성과 신규 공장 증설을 통해 지역 경제에 파급 효과를 기대했던 대전시도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태양광 산업이 장기적인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모기업의 자금사정까지 겹친 만큼 무리한 사업 추진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일순 기자 ra11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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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27일 충남도청 이전 내포신도시에서 최고위원회를 개최한 후 태안과 천안지역을 잇달아 방문, 충청지역 민심잡기에 나섰다. 황 대표는 이날 내포신도시 건설현장을 방문해 “신도시 건설로 인근지역 인구가 유입돼 공동화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내포신도시 건설본부 회의실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권희태 충남도 정무부지사로부터 신도시 건설계획을 보고받은 뒤 이같이 말했다. 황 대표는 “예전에는 신도시 건설시 인근 농촌지역으로부터 인구유입 여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농촌 인구가 줄면 해당 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는 것은 물론 이로인해 국정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대전지역 외에 신도시 인근 시·군을 포함해 종합적인 시야를 갖고 이에 대비한 대단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또 “중앙과 지방간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지역 내 균형발전이 더욱 중요하다”며 “신도시가 건설되는 주변지역 반경 30~50㎞ 지역도 발전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홍문표 충남도당위원장은 “내포신도시의 교통인프라 구축을 위해 수도권전철을 홍성까지 연장하고 서해선복선전철 건설시 장래신설역으로 돼 있는 삽교역을 신설역으로 확정해달라”고 건의했다.

오후에 태안군청을 방문한 황 대표는 2007년 기름유출 사고 피해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5년전 평온한 마을에서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큰 재앙이 발생해 온 국민이 손수건으로 기름때를 벗기던 시절이 있었다”며 “피해보상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고 생활고로 주민 네 분이 유명을 달리한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측이 기금 출연계획을 밝혔지만 주민 정서와 거리가 멀어 특위에서 다시 불러 대책을 요구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질적 대책과 방향이 잡히길 기대하고 있고 주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앞서 홍성지역 농·축산인 및 여성 농업경영인과 오찬간담회를 했으며, 저녁에는 천안의 한 음식점에서 충남지역 총학생회장단과 만찬간담회를 여는 등 이날 하루 충남 곳곳을 돌며 지역 여론을 수렴했다.

태안=박기명 기자 kmpark3100@cctoday.co.kr

홍성=이권영 기자 gy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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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서울대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을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와 관련 세종시 시민단체들이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특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사수를 위해 노력해 온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수 세종시대책위원회(위원장 한상운)가 ‘서울대 세종시 이전’을 새누리당 대선 공약에 포함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 등을 계획하고 있어 주목된다. 세종시 지역 100여 개 시민단체와 관변단체 등으로 구성된 세종시대책위가 ‘서울대 세종시 이전’ 공약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세종시대책위원회는 세종시 자족기능 확보를 위해 정책적으로 이전이 용이한 국립 서울대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서울대 이전에 필요한 부분들을 세종시가 지원하고 해결해 줌으로써 유능한 인재를 육성해 과학벨트를 세계 수준의 연구단지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또한, 세종시의회 김선무 부의장(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새누리당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학교 측에서 이전을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며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도 세종시특별법 개정 공청회에서 서울대 이전을 말씀하셨는데 세종시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강용수 부의장(새누리당)도 “자족기능 확보를 위해서는 서울대가 백 번 와야 한다”며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에 포함시켜 서울대가 반드시 세종시로 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세종시의회 차원에서도 적극 검토해 의견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세종시원주민비상대책위원회(최봉식)는 “서울대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세종시는 명품도시로 모습을 갖춰 갈 수 있고 과학벨트를 위해서라도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상운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사수 세종시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 이전이 확실치 않지만 새누리당에서 나온 말인 만큼 대선 공약에 포함시켜 반드시 세종시로 이전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을 모으자”고 주장했다.

세종=황근하 기자 guestt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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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선과 조화를 이루며 길게 이어진 공산성. 1600년의 세월 동안 저 성벽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었이던가? 바로 우리의 역사다. 백제문화제를 맞아 잃어버린 역사 백제를 찾아보자.  
 
충남 공주를 지나가다보면 금강 건너편에 길게 이어지며 제법 멋드러진 성곽이 보인다. 밤에 지나갈 때면 색색의 조명을 받아 더욱 멋진데, 이곳이 공산성이다. 공산성은 우리나라에 남은 성 유적 중 전체를 온전히 보존한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공산성은 패망한 백제의 유물이기도 하지만, 이후에도 그 전략적 가치 때문에 조선시대까지 증개축되며 계속 사용됐다. 그래서 그 곳에는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이 색다르기도 하다. 시민들의 멋진 쉼터로 거듭난 공산성이지만, 백제문화제를 앞두고 바라본 공산성은 의미가 남다르다.

부흥의 기대로 꽃피운 웅진시대

공산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4~5세기 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기 475년,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압박을 받은 백제 문주왕은 한강을 따라 마련된 수도를 버리고 멀리 이곳 공주까지 내려왔으니 얼마나 비통했을까.

이후 성왕이 제2의 부흥을 계획하며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약 64년간 공산성은 백제의 중심이 됐다.

이후에도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공산성은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다가 소멸된 후에도 고려의 군사 거점으로 계속 사용됐고, 조선시대에 역시 지역 요충지 역할을 했다. 1623년 이괄의 난 때는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오기도 했다.

그러면 공주는 왜 백제의 수도가 됐나?

광개토대왕의 활약으로 대륙을 석권한 고구려는 이어 즉위한 장수왕이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남하정책이 시작된다.

이 때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에 성을 58개나 빼앗기며 한강 이북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됐다.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의 북성과 남성을 차례로 공략했고, 이 전투에서 백제는 개로왕이 전사하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다행히 고구려군이 한성을 완전 점령하지 않고 한강 이북으로 철수했지만, 백제는 한성을 더 이상 지키기가 어려워 천도를 단행한다.

그렇다면 왜 공주인가?

이는 당시 담로라는 백제의 권력 체계 때문이다.

전사한 개로왕에 이어 즉위한 문주왕은 즉시 천도를 결심하는데 그 곳이 바로 충남 공주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문주왕이 개로왕의 자식이 아니라 공주를 기반으로 한 토호세력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 연지부근에 비밀통로로 상요됐던 '암문' 성곽밑으로 한명이 지날수 있는 크기의 문으로 평소에는 막아뒀다가 필요시에만 사용한다.

역사의 흔적, 공산성

공산성에 도착하면 누구든 언덕위로 펼쳐진 장엄한 성벽과 커다란 성문을 올려다보게 된다.

이곳이 공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금서루다.

지금의 금서루는 1993년에 복원한 것인데, 복원 당시 조선 후기에 발간된 공산지 기록과 지형적 여건을 고려했다고 한다.

금서루로 올라가는 성벽 밑에는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 한무리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공산성은 전체를 둘레길처럼 조성해 역사 유적이자 산책로, 공원으로 꾸며졌다. 금서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금강이 가로지르는 공주시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문을 갖추고 있는데, 금서루는 서문에 해당된다. 잘 닦인 성곽길을 따라가면 남문인 진남루를 만나게 된다. 진남루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길이 모여 한양으로 갈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진남루 위쪽으로는 석축이 없는데, 공산성은 처음 축조될 때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됐기 때문이다.

   
▲ 임류각
◆알면 더욱 재미있는 공산성

용이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다시 올라가니 남문인 영동루가 나타난다. 이곳은 그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80년 발굴 조사 때 하부구조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나 금서루와 함께 복원됐다. 그렇게 산 속으로 난 성곽을 한참 걸다보니 시야가 확 넓어지며 금강과 공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변의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면 강가에 북문인 공북루가 기다리고 있다.

공북루는 망북루로도 불렸는데, 여기서 망북은 ‘북쪽을 바라본다’, 즉 임금이 있는 곳을 기린다는 의미다.

이렇게 공산성의 주요 4대문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만하루와 커다란 연못 ‘연지’가 나타난다.

연지의 벽면은 돌로 경사지게 쌓아올린 것이 특징인데, 밑면의 지름이 7m, 윗면은 21m나 되는 큰 규모다.

이 연못 바닥에서는 가장 아래에 백제 유물이, 그 위로는 신라 유물이 출토돼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나타냈다.

연지 부근에는 특이한 문이 하나 있는데, 비밀통로로 사용됐던 ‘암문’이다.

성곽 밑으로 사람 한 명이 지날 수 있는 크기의 암문은 평소에는 돌로 막아뒀다가 필요시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교

공산성의 역사적 사실은

역사 학자들은 공산성이 웅진 백제 시절 왕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과 공산성에서 출토된 유물 중 ‘궁(宮)’ 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있다.

그런데 공산성을 둘러보면 이곳을 왕궁으로 사용하기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 생활면에서는 산에 위치한 까닭에 성 내부의 실제 활용 공간이 좁고, 이동도 불편했을 것이다.

또 군사적 측면에서는 성곽이 홀겹인데다 지형적인 요소 외에는 방어에 의존할 만한 것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성이 어떻게 왕성의 역할을 했을까?

학자들은 그 자체가 당시 백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긴박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당시 백제의 상황이 그만큼 긴반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고구려에 밀려 남쪽으로 피난을 오면서도 새로운 부흥을 노리던 백제.

공주는 그런 백제에게 한 숨을 고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백제 왕실이 잠시 머물다 갔지만, 이후에도 문화·전략의 요충지로서 백제문화의 꽃을 피우는 도시 역할을 했다. 산뜻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공산성 둘레를 한바퀴 걷는 동안 어느세 백제의 옛 흔적에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옛 백제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볼 수 있길 희망한다.

글·사진 =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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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80여 일 앞두고 시행한 충청투데이 2차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정당지지도가 민주통합당보다 앞섰지만 격차는 한 달 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정당지지도는 38.6%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27.4%를 기록했고, 통합진보당 2.4%, 선진통일당이 1.5%로 뒤를 이었다. 9.5%는 기타 정당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자도 20.5%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달 충청투데이가 실시한 1차 여론조사에서 44.6%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새누리당은 약 한 달 만에 6%포인트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하락세는 박근혜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 논란, 홍사덕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대선 불출마 종용’ 등 잇따른 악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지난달에 비해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새누리당과의 격차를 11.2%로 좁히며 추격의 고삐를 조이는 모습이다.

이는 당내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의 ‘컨벤션 효과’ 덕분으로 풀이된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40대(34.0%), 50대(53.3%), 60대 이상(61.4%)이 새누리당을 지지한 반면, 20대(28.9%)와 30대(34.7%) 등 비교적 젊은 층은 민주당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병욱 기자 shod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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