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에서 10년 째 슈퍼를 운영하는 A씨는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에 마지못해 가게를 내놨다. 매출은 예전만 못한데 건물주가 배 가까이 오른 임대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임대료 인상요인은 없는데 왜 임대료를 올리냐고 건물주에게 묻자 ‘큰 기업’에서 두 배의 임대료를 제시해 어쩔 수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고의적으로 높은 임대료를 제시해 재계약을 방해한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개월 뒤 A씨가 운영했던 슈퍼자리에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문을 열었다.

대전지역 B골목의 상인들은 난데없는 SSM의 입점소식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에서 볼수 없도록 가림막을 설치한 뒤 공사를 진행한 매장이 SSM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B골목 상인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SSM이 입점한 후에는 일시정지 권고를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해 가림막 공사를 한 것 같다”면서 “대전시에 사업조정신청을 해둔 상태로 주변 상인들과 힘을 모아 입점을 저지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소슈퍼마켓 인수 후 간판만 바꾸어 영업을 개시하는 등의 기습적·편법적 SSM 오픈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6일 중소기업 중앙회에 따르면 SSM 등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장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조정신청 건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지만 합의타결은 극히 저조한 상태다.

또 일부 업체의 경우 사업조정을 피하기 위해 가림막 공사를 진행하고 중소슈퍼마켓을 인수한 후 간판만 바꾸어 영업하는 등의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SSM이 문을 열기 전 다른 업종이 입점한다는 식의 허위 홍보를 하고, 높은 임대료를 제시해 기존 중소상인과의 재계약을 거부토록 하는 사례도 접수되고 있다.

이처럼 SSM과 관련된 편법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책은 미흡한 상태다. 실제 이달 초 기준 사업조정신청은 200여 건으로 2006년 4건, 2007년 4건, 2008년 4건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합의타결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SSM 진출에 따른 골목상권의 폐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에도 규제법률(유통산업발전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면서 “대기업의 진출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들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항룡 기자 prime@cctoday.co.kr

사업조정제도란 대기업의 사업 진출로 인해 당해 업종의 상당수 중소기업이 수요의 감소 등으로 경영안정에 현저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사업인수·개시·확장을 연기하거나 사업축소를 권고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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