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넘게 해 온 제약회사 영업일을 그만 둔 이 모(45·대전 대덕구) 씨는 퇴직금과 그간 모아둔 은행예금 등 많은 재산을 탕진할 위기에 처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재취업을 위해 수년 동안 노력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큰 맘 먹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 창업에 뛰어든 게 이 씨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이 씨는 "개업 초기 장사가 잘 됐었는데 인근에 같은 업종의 경쟁업체가 무려 4곳이나 생기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며 "이젠 남은 건 빚뿐인데 가장으로서 마음이 무겁다"고 어려운 속내를 털어놨다.

최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대전 동구의 A동네. 미용실, 분식집, 세탁소, 호프집 등 입주와 동시에 하나 둘 상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뒤 같은 업태·업종의 상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면서 이곳 상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 거리의 상점 대표 최 모(51) 씨는 "조그만 아파트 단지에 주민 수는 제한돼 있는데, 미용실이 5곳, 세탁소가 4곳, 슈퍼가 4곳이나 된다"면서 "단지 주민들이 마트 등 복합쇼핑센터를 선호하는 마당에서 살아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창업한 것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의 비대칭에 따른 고질적인 '일자리 부족'이 과다한 경쟁을 부축이면서 창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대전지역의 경우 제조업체, 산업단지, 공단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한 반면 서비스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 많은 시민들이 일자리 선택에 큰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전에는 공무원과 연구원 아니면 운전기사, 서비스업 종사자 밖에 할 게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지역에 거주하는 40·50대 등 비교적 자금력이 있는 세대들의 경우, 취업보다는 창업을 선호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미래가 불투명한 저급 일자리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창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처럼 취업보다 창업을 선택하는 세대들이 늘면서 상권이 형성된 곳마다 중복된 업종·업태의 상점들로 골치를 앓고 있다.

대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시민은 "아이들에게 우리 동네에는 왜 이렇게 같은 종류의 상점들이 즐비한 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면서 "자녀들이 돈벌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종 외의 다른 산업의 육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항룡 기자 prim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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