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흉년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서글픈 심정입니다.”

농민 A(55·충남 논산) 씨는 자신의 집 도강에 쌓여있는 벼를 보며 한숨졌다.

예년 같으면 전년에 추수한 물량 중 일부를 집에 보관했다가 이맘때 쯤 RPC(종합미곡처리장)에 내다 팔고 추수 때보다도 가마 당 2000~3000원은 더 받았다.

그러나 지금 A 씨의 집에 쌓여있는 쌀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쌀이 남아도는 통에 팔 곳조차 사라지면서 할수 없이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다.

당시 A 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벼 농가들은 쌀 값 하락을 무릅쓰고서 판매처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적지 않은 분량을 처분하지 못했다.

A 씨는 “평년 같으면 쌀 값이 오르기 시작할 4월이지만 올해는 오히려 폭락 수준으로 값이 떨어지면서 농번기를 앞두고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라면서 “지난해 벼 농사로 빚만 늘어서 올해는 뭘해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최근 거래되는 벼 40㎏는 4만 1000원, 불과 두 달 전(4만 5000원)보다도 가마당 4000원 가까이 급락했다.

또 지난해 이맘 때 거래 가격(5만 3000원)에 비해서는 무려 25% 가까이 떨어진 가격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여름 장마철 고온다습한 기후가 시작되면 품질마저 급락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어떻해서든 내달까지 잔여 물량을 처분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상황은 더욱 어려운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현 정권들어 국내 잉여 쌀의 가장 큰 소모처인 대북 쌀 지원이 요원해진 데다 최근에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더욱 경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부터 과도한 쌀 수매로 상당한 자금을 지출한 농협이 내달부터 민간 RPC로 쌀을 매각할 경우 공급 과잉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 경우 벼 40㎏ 당 3만 6000원 대까지 폭락할 것이란 우려섞인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관계자는 “현재 정부나 자치단체가 쌀 대책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은 도무지 실현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대북 쌀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면 전국 농민의 파멸만 초래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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