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한 할머니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의 한 고물상에 박스와 신문 등 폐지가 담긴 유모차의 무게를 달기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서 하루하루 폐지를 주워 팔고 있는데 앞으론 이 짓도 못하겠어."

26일 오전 11시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의 한 고물상.

경기한파가 고물상에까지 불어닥치면서 파지·고철 등을 수집하는 권순택(87·청주시 봉명동)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로 폐지를 추스리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박 할머니는 "4년째 혼자 살고 있는데 파지 값이 너무 떨어져서 쌀 사기도 힘들다"며 "오늘도 유모차로 한 차를 싣고 왔지만 1400원 밖에 못 받았다"고 각박한 현실을 한탄했다.

올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당 150원까지 하던 폐지는 최근 제지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당 20~30원까지 내려가 바닥을 치고 있다.

이날 고물상에서 만난 박원식(70·청원군 남일면) 할아버지는 전선 피복을 벗기던 중 "예전에 고철 한 트럭을 싣고 가면 50만~60만 원까지 받았는데 지금은 8만 원 정도밖에 받질 못하고 있다"며 "고철 값이 너무 떨어져서 지금은 고물상에서도 아예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철, 폐지 등 수집업체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하루하루 생계를 연명하던 노인들도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고물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손수레에 박스와 신문을 가득 싣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고물상을 찾은 송판례(79·청주시 봉명동) 할머니는 3일 동안 폐지를 유모차 한 가득 모아 고물상에 팔았지만 손에 쥔 것은 고작 800원이 전부였다.

송 할머니는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픈데도 병원비가 없어서 못 가고 있다"며 "라면 값도 너무 올라 이 돈으로 라면 한 봉지 사기도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고물상을 찾은 김진우(73·청주시 사창동) 할아버지는 "전에는 이렇게 파지와 고철을 모아서 팔면 한 달에 못해도 70만~80만 원까지 벌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하루 6000원 정도 벌이 밖에 되지 않아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15만~20만 원 밖에 못 벌고 있어서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고물상에는 올 9월까지 폐지와 고철 값이 급등하면서 하루 100명의 노인들이 고물을 수거해 팔았지만 지금은 폐자재 값이 떨어지면서 하루 20~30명 정도의 노인들만 힘겨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홍규(37) 상당고물상 대표는 "철강업체와 제지업체가 고철과 파지를 잘 받지 않아 청주와 청원지역 380여 개의 고물상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라며 "고물상들도 걱정이지만 생계에 허덕이는 노인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며 불황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현재로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한진 기자 adhj7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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