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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근 주(駐) 독일 한국대사관 공사는 “지방행정 공직자로 외통부 고위공직자에 진출한 것은 첫 선례이기 때문에 부처 간 인사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세계적 추세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
대담·정리=서울 방종훈 기자
“세계가 한가족이 되고 있고, 내치와 외치가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흐름입니다. 그동안 행정안전부 공직자로 일해왔지만 앞으로 3년간 외교업무를 공부하고 익히면 종합행정가로서 발전할 수 있고, 이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면 정부 부처의 행정업무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업무 역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충남도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정재근 전 행정안전부 대변인이 최근 주(駐) 독일 한국대사관 공사로 부임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한 후 28년 여 동안 몸담아왔던 행안부를 뒤로하고 외교통상부 공직자로 독일에서 새로운 둥지를 텄다.
정 공사는 그동안 내무부와 청와대, 행안부 등에서 굵직굵직한 요직을 거치면서 공직생활을 해왔던 만큼 이번 외통부의 정식 공직자로 3년 간 독일 생활을 결정하기까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신의 오랜 터전인 행안부를 3년 간 떠나게 되는 결정도 쉽지 않았지만 지방행정 출신 공직자가 그야말로 새로운 외통부 업무와 외교관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은 정 공사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해석된다.
정 공사는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 부처에서 새로운 공직 업무를 배우고 싶었고, 이 같은 평소 생각을 실행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넣어두어선 아무것도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외통부 지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자신의 결정을 당당히 밝혔다.
“3년 간의 외교관 생활을 한 후 다시 행안부에 복귀하게 되면 지금보다 좀 더 완벽한 공직자에 근접해있을 것입니다. 특히 지방행정 공직자로 외통부 고위공직자에 진출한 것은 제가 처음으로, 훌륭한 선례와 사례를 만들어 전혀 다른 업무의 부처 간 인사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세계적 추세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다음은 정 공사와의 일문일답>
- 행안부 출신인 정 공사가 독일 외교관 업무를 지원한 계기는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내치와 외치가 하나가 되고 있다. 예를들어 신종플루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각 국가들은 치료제를 서로 공급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등 하나의 체제를 보였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행정업무를 보는 공직자가 외자유치에 나서는 등 기존의 고유한 업무영역이 모호해지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주 독일 공사로 지원한 것은 이 같은 세계적 추세와 함께 보다 완벽하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공직생활을 위해서 결정하게 됐다.”
- 주 독일 공사는 그동안 해왔던 업무와 매우 다른 그야말로 외교관 역할을 하는 것인데 주독일 공사로서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적 차원에서 외교업무도 맡아보고 싶었고, 공부도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종합 행정을 하는 공직자로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공사직 수행을 위해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기초교육을 받았지만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공사는 대사관에서 발생하는 일을 종합적으로 조정·처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부족함이 많지만 우선 우리 정부가 하고있는 일을 독일에 상세히 소개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을 외국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하는 업무에 힘을 쏟고 싶다. 여기에 우리 교포와 교민 등과 유대강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랑스런 조국임을 다져나가고 싶다.”
- 26회 행시에서 대학재학 중 합격을 하는 최연소 합격자로 유명세를 탔다. 공직에 나선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대학 2년 당시 겨울방학이었다. 당시 경제학 교수의 겨울 특강에 참여했는데 그 교수로 인해 공직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 교수는 당시 수업에서 하나의 사례를 설명해주었다. 교수에 따르면 그 당시 돼지고기 파동이 있었는데 이는 돼지고기 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사료값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고 했다. 돼지고기 값 폭락에 앞서 고기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자 정부에선 돼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입안자는 돼지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돼지는 100일이면 임신이 가능한데 이 정책을 기초한 공직자가 이를 계산하지 못해 전국적으로 돼지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 결국 돼지고기 값이 폭락하는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 교수는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공직자의 역할이 이 정도로 크다는 것, 그리고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참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고 공직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 그동안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지난 83년 총무처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내무부로 발령받아 충남도에서 일을 하게 됐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87년 여름에 충남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당시 8만 2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했은데 논산과 부여, 서천 등의 읍내가 그야말로 물바다였다. 당시 수재민을 구호하는 대책반에 참여하게 됐는데 18억 원이라는 정부의 구호자금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구호품을 구입해 수재민들에게 나워주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다급해 당시 18억 원의 정부 구호금을 내 개인통장으로 받고 모포와 난로, 조리기구 등을 구입해 수재민들에 이를 매일매일 조달했다. 또한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과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당시 도청 공무원들을 대부분 동원시켜 이를 차에 싣게하는 등 정신없이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이후에 수해지역을 방문했는데 내가 직접 구입한 구호품을 수재민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뭔지 모르지만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공직자로서 진심으로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 바람직한 공직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부호인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를 통해 답하고 싶다. 한 대학생이 버핏에게 ‘투자의 귀재인데 실패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버핏은 '내가 투자한 것에 대해 실패한 적은 없다. 그러나 확신을 갖지 못하고 투자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패는 많다’고 답했다. 이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실패는 없지만 행위하지 못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는데 이를 실행하지 못한 것은 실패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 역시 같은 답을 내놓았다. 결단을 내릴 때는 과감하게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실 그동안의 공직생활 중에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못한 것이 많다. 하고자 했던 것의 90%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상황을 고려한 것이지만 실패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공직 업무를 창조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 비율을 늘려 나가고 싶다. 외교관으로 독일 가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외교부 지원에 대해 주변에서 생고생한다고 했지만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변화돼야 하고 내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망설이다가 후회하느니 도전하는 게 낮다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철학이자 올바른 공직자 길이라고 생각한다.”
- 논산 출신으로 충청도민에게 한마디 한다면.
“새로운 경험을 찾아 독일로 가게됐다. 배우고 쌓아온 것이 결국 고향 발전을 위해 쓰여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열심히 해서 나라와 고향을 위해 항상 역할을 다할 것이다.”
bangjh@cctoday.co.kr
프로필
△1961년 논산 출생
△대전고·고려대 행정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82년 26회 행정고시 최연소 합격
△대전시, 내무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안전부 자치제도과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행안부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