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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문위로 매트리스가 있고 주변엔 쓰레기가 널려있는 폐가 모습. 이승동 기자 yoo772001@cctoday.co.kr | ||
평온한 주말을 보낸 대전 도심의 월요일은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활기가 넘쳤지만 가림막이 설치돼 도심과 차단된 이곳은 시간을 알 수 없는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대흥5길을 따라 이곳에 들어서자 장기를 훤히 들어 낸 폐가가 줄을 잇고 있었다.
30여 가구쯤으로 되는 폐가와 공가, 이미 철거가 완료돼 집터만 남아 있는 공간, 그 속에서도 34가구가 위태위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외곽의 경계를 상실한 폐가의 유일한 보안장치인 온갖 생활쓰레기, 유리와 시멘트 등 건축물 잔해를 뚫는 손쉬운 잠입으로 밤사이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떼어낸 나무 문짝 위로 매트리스가 가지런히 깔려있고, 주변에 여성 속옷과 휴지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혹여 이곳이 범죄현장으로 악용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 지역 실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대흥1구역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를 부랴부랴 찾았다.
그에게서 짐작했던 내용이 쏟아졌다.
"여기요. 낮에는 주변 학교 학생들이 담배물고 활보하고, 밤에는 대전지역 노숙자들이 찾아들고, 몇 달 전에는 노숙자들이 난로까지 피어놓고 생활을 하더라고요. 이제 따뜻해지면 더 모일 텐데, 무서워요. 대흥5길에 가로등이 불과 7개 밖에 없어요. 밤에는 몇 발짝 떨어져 있어도 얼굴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다닙니까. CCTV는 말할 것도 없고…."
노숙자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현지주민들의 생활이 걱정스러워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주택의 초인종을 눌러보니 군 초소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잔뜩 경계된 목소리가 철문을 넘어 날아왔다.
생활환경을 물어보자 집을 지키고 있던 아주머니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담아놨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마당에 뭘 놓을 수가 없어요. 그릇과 항아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훔쳐가고, 마당에 심어놨던 나무도 없어질 판인데, 집까지 들어오지 않는 게 오히려 고맙지요. 주말뉴스에 나오는 나들이 행렬 기사가 우리에게 먼 나라 얘기고, 칠레나 아이티 얘기가 우리 얘기 같아요. 가끔 우리가 대전시민인가 하는 의심도, 섭섭함도 있습니다.”
대문을 열어주지 않아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주머니의 경계심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얼마나 깊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찾아오는 봄을 알리는 신상품이 소개되고 있는 3월 15일, 백화점과 불과 2~3분 거리에 있는 대흥동 재개발지역은 아직도 한 겨울이었다.
경찰은 이날 대흥동 재개발지역의 범죄 발생을 우려, 경찰병력 300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방범활동을 벌일 예정이었지만 우천을 이유로 19일로 연기했다.
유창림·이승동 기자 yoo77200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