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린튼 선교사.한남대 제공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한남대 설립자 고(故)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ㆍ1891~1960) 선교사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는다.

한남대는 제 91주년 3·1절을 맞아 설립자인 윌리엄 린튼 선교사가 한국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근현대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는다고 23일 밝혔다.

훈장은 내달 1일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기념관에서 유족을 대표해 손자인 인요한(John Linton)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받게 된다

1912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21세의 나이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린튼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48년동안 독립운동 및 호남·충청지역 학원선교에 헌신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1919년 전북 군산의 만세시위 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하고, 3·1운동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3·1 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대회에 참석, 한국의 처참한 실정과 독립운동의 비폭력 저항정신을 전했다.

또한 신흥학교 교장 당시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 학교를 자진 폐교해 1940년 일제로부터 추방됐다가 광복 후 다시 돌아왔다.

이후 한국전쟁의 와중에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로 피했으나 그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국 땅을 지켰다.

그는 말년에 암 투병을 하면서도 1956년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했고 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으로 인가를 받아 초대학장에 취임했다.

병 치료도 미룬 채 한남대 설립에 매진했던 그는 1960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가 병원에 입원했으나 2개월 만에 숨졌다.

유효상 기자 yreporter@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