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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공 줄타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필립은 세계무역센터를 건너기 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시드니 항구 다리의 철탑을 건넜다. 그리고 17살 때 신문에서 처음 보았던 세계무역센터 사이를 건너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즐거워하며 참여했다. 그리고 그의 진지함에 놀랐으며, 그의 재능과 용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필립은 호흡을 가다듬고 지상에서 400m나 떨어진 공중의 줄 위에 발을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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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이 세계무역센터 양쪽 끝에 줄을 연결하고는 그 위를 걷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무도 그곳 사이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시간과 공간에는 특정 지워 지지 않은,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점들이, 서로 연결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은 채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진정 미친 짓이고, 정말로 숭고한 행동이며, 극중 한 인터뷰에서 나온 말처럼 '누구도 해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위한 일'이며,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절대로 환영받지 못할 '쓸데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의 완벽한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의 용도를 '그저'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는 필립의 퍼포먼스는 쾌감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백미는 당시 세계무역센터를 건너던 필립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처음부터 인터뷰와 재연된 영상물로 진행하다가, 필립이 드디어 줄 위에 오르는 순간 화면은 정지한다. 당시 찍은 스틸사진들과 지상에서 촬영한 사람들의 반응들만이 고요하게 펼쳐지는데, 그것은 마치 모두가 숨죽이고 필립의 퍼포먼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지상에서 까마득하게 높은 곳, 안개를 뚫고 필립은 긴 장대를 의지하여 걷는다. 그 모습은 마치 수도자 같았으며, 악당 같았고, 신비로웠고 아름다웠다.(당시 친구들의 인터뷰를 보면, 모두가 '아름다웠다' 라고 증언하고 있다.) 필립의 공중곡예장면은 그 어떤 CG와 잘 설계된 액션시퀀스보다도 황홀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마침내 필립은 45분 동안 8번이나 왕복해 건너면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누워서 새들과 이야기를 한다.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줄 위에 올라선 순간 그의 얼굴에선 안도감이 퍼졌으며,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한다. 필립 역시 줄 위에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그곳을 건넌 데에 이유는 없다. 야망도 없었다. 그는 단지 줄 위에서 행복한 남자였던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 ‘맨 온 와이어’는 이들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고발된 내용, 'MAN ON WIRE(줄 타는 남자)'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