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무 번 이상 입사시험에 응시하고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대학졸업반 A(25·여) 씨는 다음 주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 여부가 고민이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4년간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내주신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2. 지역 B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는 C 씨는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빌려줄 학사모와 가운을 몇 벌이나 받아 놓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지난해 미취업 졸업생들이 졸업식에 대거 불참하면서 학사모와 가운이 절반 이상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였던 기억 때문이다.

#3.충남 D대학 졸업반인 E(27) 씨는 지난 설 명절에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가지 않았다.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 부모님 뵐 낯도 없고 명절이라고 모인 친척들의 취업과 관련한 질문공세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 E 씨는 “명절에 고향에도 못 가는 죄인 아닌 죄인이 돼버린 내 처지가 처량하지만 도서관에서 취업 공부를 하는 것이 차라리 맘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대전·충남지역 대학들이 졸업 시즌에 돌입하면서 미취업 졸업예정자들은 마음이 서글프다.

4년간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과 지도해준 은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동문수학한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하는 날이지만 ‘학생신분’이라는 보호막을 잃고 직장도 없이 사회로 내몰린다는 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요즘 대학 졸업식은 ‘기쁜 날’이 아닌 ‘피하고 싶은 날’이 되고 있다.

지난주 졸업한 박모(24) 씨는 “‘백수’라는 꼬리표 때문에 도저히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며 “차라리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미룰 걸 졸업부터 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졸업식 풍경도 바뀌고 있다.

과거 캠퍼스 곳곳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주며 다정스럽게 사진을 찍던 모습은 예전만큼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졸업식장 빈 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요즘 모습이다.

가끔 일부 대학에선 석·박사 졸업생들이 학사 졸업생들의 빈자리를 채우는가 하면, 졸업식 후 술자리도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 졸업식 후 사진만 몇 장 찍고 식장을 떠나기 일쑤다.

대학가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김모(37) 씨는 “예년에 비해 졸업 축하 꽃다발 판매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취업난으로 인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이 훨씬 많은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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