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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1월 7일 우암상가 아파트 화재 붕괴시 사진. 청주동부소방서 제공 |
28명 사망, 48명 부상.
지난 1993년 1월 7일 오전 1시 13분.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충북 청주시내 한 상가 아파트에 예기치 않은 비극이 찾아왔다.
‘우르르 쾅쾅’.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수 십명이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렸고 곳곳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전체가 주저 앉은 ‘청주시 우암상가 아파트 화재 붕괴사건’.
이날 참극은 상가 좌측 뒤편에 위치한 이불가게 인근에서 불길이 치솟으면서 삽시간에 연기가 아파트 전체로 퍼져나가며 시작됐다.
잠 자다 놀란 주민들은 서둘러 대피했다. 불길을 피해 옥상에만 5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렸다.
긴급출동한 소방차가 불길을 잡기 위해 쉴새없이 물을 뿌렸다. 그 순간 다른 한 곳에서 ‘펑’ 소리와 함께 대재앙이 찾아왔다.
상가 점포와 아파트에서 사용하던 LP가스통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건물 전체가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17년이 흐른 2010년 1월 7일 우암상가 아파트는 무너졌을 당시와 비슷한 상가 및 아파트의 복합건물 구조인 평화상가 아파트로 재건축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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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 뒤 현재는 재건축된 평화상가 아파트.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 |
긴 세월이 지나 이곳에서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평화상가 아파트의 재건축 의미가 담긴 기념비 만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이곳에 살다 부모와 자식, 친구 등을 잃은 이들은 거의 다른 곳으로 떠났고 죽어서도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몇몇 가정 만이 이곳에 살고 있다.
부인을 순식간에 잃은 김모 씨는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고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며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몸서리 쳐지지만 부인과 함께 살았던 곳이라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우암상가 붕괴 당시 상가 인근에서 장사를 했다는 70대 노인도 그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재 평화상가 1층에서 과일장사를 하고 있는 이 노인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며 “건물이 무너지면서 주변은 온통 뿌옇게 변해버렸고 소방관들 수 백명이 나와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내고 사체를 발굴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당시 구조·구급 업무를 맡았던 청주동부소방서 민광현 소방장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포크레인이 콘크리트 더미를 한웅큼 걷어낼때 마다 시커멓게 그을린 잠옷바람의 사체가 나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다 끝내 숨졌던 참혹함 만이 기억에 남는다”며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를 업은 채 숨져있던 30대 여성이 발견됐을 때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 온다”고 전했다.
우암상가 화재는 28명 사망에 48명 부상, 74개 점포 전소, 지상 2~4층 아파트 59가구 전체 붕괴, 250여 명 이재민 발생, 9억 9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냈으며, 지방은 물론 중앙언론사에서도 취재진을 현장에 급파하는 등 전국적인 사건이었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