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균형발전을 둘러싼 대립의 불씨를 끄집어 냈다.

여론을 떠보면서 기회를 엿봤던 정부는 경제위기를 기회로 수도권 규제의 빗장을 푸는 방안을 내놨다.

비수도권은 ‘이제 막 지방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는 데 모두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며 극렬히 반발하고 있는 반면, 수도권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내친김에 수도권 규제의 핵심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헌법재판소의 도마 위에 올리기로 했다.

수도권 규제를 말 그대로 ‘수도권을 옥죄는 성가신 억압’으로 보느냐, 아니면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막기 위한 차단막’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인 데 결론은 법적인 해결점에서 도출되는 만큼 규제완화와 관련한 각종 법·시행령을 둘러싼 국회 차원의 논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정부 의지만으로 바꿀 수 있는 규제완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은 크게 △수도권 공장 신·증설·이전 규제 폐지 또는 완화 △공장·산업단지 입지규제 완화 △자연보전권역 규제완화 △과밀부담금·수도권 기업 중과제도 완화로 요약된다. 먼저 산업집적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수도권 산단에선 공장 규모나 업종과 관계없이 공장 신설·증설·이전이 허용되고, 산업단지 외 성장관리권역(경기 북부·남부)에선 모든 첨단업종(96종) 관련 기존 공장의 증설 범위가 확대되며 과밀억제권역(서울·인천·경기 일부)에서도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공장 증설이 확대·허용된다.

또 ‘경제자유구역 등 국가 정책적으로 개발되는 지구에 대한 산업단지 총량규제 배제’는 정부 고시만으로 가능하고 공장총량제 적용 대상을 완화하는 것도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정부는 이 밖에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관광지 조성사업과 대형건축물 축조, 폐수 비발생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는 등 수질오염 총량관리 지역에 대한 입지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기타 규제완화 사안과 관련,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과밀억제권역을 성장관리권역으로 조정하는 것과 지방이전 대상에서 제외된 공공기관의 신·증축을 허용하는 것, 금융중심지 내 금융업소와 산단 내 R&D(연구개발) 시설에 대해 과밀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것 등은 수정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 정부 발표 가운데 서울시에도 첨단산업단지 개발을 허용하는 것과 입지규제 중심의 환경규제방식을 총량제·배출규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 수도권 기업에 대한 취·등록세 중과세제도를 완화하는 것 등은 법률 개정 사안으로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수도권 국회의원…‘돌격 앞으로’

정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규제완화만으로도 지방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기업유치에 적신호가 켜졌는데 수도권 의원들은 한 발 더 나가 아예 수도권 규제의 틀을 허물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현재 수도권 규제완화를 담고 있는 법안은 4개 법률, 7개 법안인 데 국가균형발전 이념의 근간인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인천 남구갑)과 정진섭 의원(경기 광주), 김영우 의원(경기 포천·연천), 정부가 각각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모두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들인 데 가장 위협적인 건 ‘정비발전지구를 도입하자’는 주장으로 일종의 규제특례지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단 이들이 요구하는 정비발전지구 지정 대상은 공공청사·공공기관·시설이전 부지와 인접한 주변지역, 산업구조 고도화 필요지역,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2조 5호의 낙후지역, 접경지역지원법 제2조 1호에 따른 접경지역, 오염총량관리계획 수립시행지역,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에 관한 지원특별법 제2조 3호에 따른 주한미군 반환 공여구역 등이다. 충남발전연구원에 따르면 정비발전지구 지정 대상 면적을 종합하면 수도권 전체 면적의 92%가 대상에 포함되는 데 여기서 공장총량규제, 과밀부담금,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규제, 광역적 기반시설 설치비용 부담, 공장 신·증설·이전·업종변경 등에 관한 규제를 풀겠다는 얘기다. 비수도권 입장에서 더 암울한 건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아예 폐지하기 위해 경기도와 손발을 맞춘 수도권 의원들의 움직임이 위협적이다. 공장총량제 폐지, 4년제 대학 신설 허용, 개발특례지구 지정, 연수시설 신·증축 허용, 대규모 택지조성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법(안)을 제정하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치열한 힘 겨루기 예고

수도권 규제완화팀의 행보가 빨라진 만큼 수도권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비수도권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여당 의원 60여 명과 비수도권 출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도권 규제철폐 반대 국회의원 비상모임(이하 비상모임)을 결성하고 곧바로 대응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한 법률안 개정 저지 및 수정 △국가균형발전 촉진 관련 특별법 제정 검토 △국토이용 효율화 방안의 헌법 소원 검토 △대규모 장외집회에 나서기로 활동 방향을 정했다.

일단 시행령 개정만으로 수도권 규제를 풀려는 정부의 계획에 맞서 정부가 뜯어 고치려는 시행령 관련 내용을 해당 법률에 명시하는 작업에 나서 정부의 의도를 무력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수정법이나 산집법 등 균형발전정책의 근간을 더욱 명확하고 강력하게 정비해 나가겠다는 얘기다.

또 수정법 개정안 등 수도권 규제완화 내용을 골자로 한 각종 법률 개정안을 심의할 때 비수도권 의원의 역량을 결집해 ‘법안 투쟁’ 수준에서 수도권 의원들의 일방통행을 견제해 나갈 방침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관련 법 개정안 심의의 핵심인 국토해양위의 경우 수도권 의원 11명, 비수도권 의원이 18명으로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당으로서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과반 의석(29석 중 17석)을 갖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비상모임 결성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 16명이 모임에 참석했다 당 지도부를 의식해 중도에 집단 퇴장한 사례에 비춰 정부의 지방대책 발표 시점과 맞물려 ‘정치적 결단 내지는 거래’가 성사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부담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말처럼 ‘욕을 먹더라도’ 작심하고 칼을 빼 든 정부·수도권 의원과 가만히 앉아 당할 수 없는 비수도권 의원들이 일촉즉발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국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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