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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초 역사는 제천의 역사와 함께했다.’
지역 사회의 오랜 버팀목 역할을 다하고 있는 동명초의 오랜 전통을 빗댄 말이다. 제천 동명초등학교(제천시 동명로 107)는 200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지역 최고(最古)의 전통을 지닌 명문으로서 듣는 당연한 비유다.
일제 강점기였던 1908년 ‘사립측량학교’로 문을 연 동명초는 개교 이래 2만 40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하며 100년째 ‘인재 요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학교 총동문회 출범은 8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칼날이 서슬퍼렀던 1923년. 1회~10회 동문이 뜻을 모아 ‘교우회’를 창립했다.
첫 동문회 소식지인 ‘교우회보 1호’에는 당시 동문들의 생활상과 모교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80여 년 전 동문회비는 연 1원이었다. 동문회가 결성된 지 80여 년이 흐른 2008년 5월18일. 조국현 현 회장(44회·성산장학회 회장·하나웨딩프라자 대표)이 주축이 된 6대 동문회가 동문들의 발자취와 모교의 흔적을 담은 ‘제천 동명 100년사’를 펴 냈다. 500쪽 넘는 책자에 담긴 한 동문의 축전이 당시 생활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숙원 실현 기쁨 당무자들의 노고 감사, 불참을 전하며 회비 2원을 별도 송금(이창훈 7회 동문, 제천동명 100년사 78쪽 수록).” 사실, 동명 100년사 발간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30년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전쟁, 3차례의 화마(火魔)를 겪으면서 모교에 남아있던 쓸만한 역사 기록들이 불에 타거나 대부분 사라졌다. 기억에 의존하려했던 30회 이전 동문들도 작고해 역사적 고증은 더욱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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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박찬우 9대 모교 교감이 1923년 발간한 ‘교우회보 1호’를 제공해 최초의 동문회 활동과 1~10회 동문명단, 교직원 명단을 알 수 있었다. 많은 동문들도 너나 없이 생활기록부와 졸업장 등을 근거로 사방으로 뛰며 각종 자료를 모았고, 결국 1000년 후세에 남을 백년사를 펴 냈다.
동명 100년사 발간위원장을 맡았던 최성택 동문(44회)은 “일제시대 결성된 동문회가 중단됐다가 1970년 중반에 다시 활동했지만 모교에 남아있던 역사자료가 전쟁과 화재 등으로 불에 타 사라져 초창기 때 기록들이 거의 남지 않아서 100년사 발간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직장까지 쉬며 100년사 발간과 100주년 기념행사에 메달렸던 조국현 동문회장은 “동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책 발간과 기념행사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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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은 “개교 100주년 기념일날 비가 와 가슴이 철렁했는데, 다행히 운동장 먼지만 걷어내고는 금새 그쳤는데, 내심 ‘개교 100주년은 하늘이 도와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며 “당시 이화숙 교장의 적극적인 협조와 모든 동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동명초는 개화기 충북 북부지역 신교육의 요람으로 100년간 우뚝서며 수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엄세호(전 제천교육장·32회), 이춘구(전 국회부의장·35회), 권희필(제1, 2대 제천시장·36회), 송만배(현 제천문화원장·36회), 송응섭(전 합참 본부장, 한미연합부사령관·38회), 최성택(전 제천교육장·44회), 김재식(현 제천시축제추진위원장·44회), 신태훈(현 자원봉사센터장·44회), 김종학(김종학 프로덕션 대표·51회), 이종호(현 충북도의원·55회), 박춘섭(현 CJB 심의홍보실장·55회), 엄태영(현 제천시장·58회) 등의 동문들은 동명초가 길러낸 인재들이다.
제천=이대현 기자 lgija200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