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올해 충청권에서 만큼은 사치였다.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세종시의 존폐 위기는 훈훈한 정담이 오가야 할 충청도 안방에 냉기를 돌게 했다.

전국에 흩여져 살다 오랜 만에 고향 땅을 밟은 충청도 사람들은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세종시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는가 하면, 세종시 추진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광경도 목격됐다.

고향땅에 찾아온 충청도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신뢰를 잃어가는 정부 여당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깊에 배어 있었다.

특히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 세종시 건설 예정지로 고향땅을 내놓은 충남 공주·연기지역 주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었다.

연기군 전의면이 고향으로 재(在)대전 연기군향우회를 맡고 있는 정교순 변호사는 “추석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고 보니 연기군 내에는 온통 ‘세종시는 반드시 원안추진돼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등 분위기가 삭막했고, 2~3명만 모이면 세종시 걱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세종시 원안추진은 연기군민들의 간절한 소망일 뿐만 아니라 충청도민들의 염원”이라며 “고향발전, 충청권의 발전,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세종시는 반드시 원안추진돼야 하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 행정기관에서 근무 중인 임 모(41) 씨는 고향인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가 세종시에 대해 솔직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임 씨는 “정부대전청사의 경우 소수의 고위직 공무원만 서울에서 출퇴근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공무원들과 가족들은 대전에 정착해 살고 있지만 이런 내용을 정부에선 꺼내놓지 않고 있다”며 “서울에서 근무하면서도 세종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요즘처럼 논란이 되는 것을 볼 때 고향에 죄를 짓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자영업을 하다 고향인 충남을 찾은 강 모(42) 씨는 “행정도시는 명칭 그대로 이미 기본계획에 자족기능이 들어 있다”며 “정부의 주요 행정기관이 내려와 자리를 잡으면 주변의 자족기능이 충족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추석 전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온 박 모(36) 씨는 “정부 여당에서 국책사업을 둘러싼 국론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부채질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이제는 최고 지도자가 결단을 내려야 이를 씻을 수 있다”고 질타했다.

대전 유성구 진잠동에 사는 박 모(33)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 데 세종시가 건설되기는 하는거냐고 묻더라”며 “더 이상 ‘멍청도’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충청도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추석연휴 동안 지역에 머물렀던 대전·충남지역 국회의원들은 “세종시 문제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며 “정부가 세종시 원안추진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국민들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천안을)은 “세종시 문제로 ‘충청도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충청인들의 뿌리 깊은 분노를 느꼈다”고 추석민심을 전했다. 박 의원은 “지역에 머무는 동안 정부가 (세종시 건설을)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이제는 번복하려고 교활한 수법을 쓰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국민들로부터 불신과 반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깉은 당 이재선 의원(대전 서을)은 “지인들과 만나보니 온통 세종시 얘기였다”며 “특히 충청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를 망치려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악평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대전 서갑)은 “추석기간 동안 지역의 재래시장과 복지시설 등을 돌아봤더니 화두는 살아날지 모르는 경제와 세종시 문제였다”고 민심을 정리했다.

박 의원은 “특히 정부는 매일같이 (세종시 원안 추진을) 한다고 하는 데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더 이상 양보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싸워서라도 세종시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지역의 분명한 목소리였다”고 강조했다. 본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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