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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단풍 | ||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
쌀쌀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찾아왔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여름 내내 초록을 자랑하던 잎사귀들은 어느 새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산 전체가 고운 색동옷으로 가을 옷을 갈아 입는다.
올해 단풍은 평년보다 사나흘 늦은 10월 1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하루 20㎞씩 남하해 10월 17일 한라산까지 온 국토를 물들일 것으로 기상청은 예보했다.
설악에서 한라까지 산길을 따라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단풍.
이 가을 자연이 빚어내는 거대한 색채예술을 감상하고 싶다면 일상의 짐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가벼운 배낭을 짊어진 채 ‘단풍 명산’을 찾아 떠나보자.
북한을 제외하고 해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단풍소식을 전하는 곳은 설악산이다.
올해도 설악산은 붉고 노란 기운들이 있는 힘껏 초록을 아래로 아래로 밀어내며 가을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최고 단풍명소로 꼽히는 설악산은 천불동과 흘림골, 공룡능선, 가야동, 수렴동, 백담사 계곡 등 산세가 수려하고 빼어나면서 단풍이 아름다운 곳들이 산 중간 중간에 즐비해 있다.
하지만 이들 계곡은 대체로 등산로가 길고 비교적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가족과 함께 단풍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주전골을 추천한다.
주전골은 한계령 중턱에서 용소폭포를 거쳐 오색약수까지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등산로가 완만해 가벼운 산책 정도의 노력만 있어도 곱고 화사한 단풍과 만날 수 있다.
특히 한계령 중간 도로변 매표소부터 출발하는 3.2㎞ 코스를 택하면 왕복 2시간 만에 단풍과 어우러진 십이폭포와 선녀탕, 만물상 등 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설악산에서 남녘으로 살짝만 눈을 돌리면 비로봉과 호령봉, 상황봉, 두로봉, 동대산 등 다섯 봉우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대산이 나타난다.
오대산은 설악산이나 내장산에 뒤지지 않는 단풍명소로 손꼽히며 해마다 이맘 때쯤 단풍놀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오렌지색과 노란색 계열의 연한 단풍이 단아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더고 잘 다듬어진 트래킹 코스도 여러 개 자리하고 있어 가족 또는 연인 함께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단풍구경은 전나무 숲길이 우거진 월정사 일주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길게 늘어선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땀방울을 식히고 얌전한 흙길은 자연의 상쾌함을 더한다.
더욱이 이 코스는 오르막이라 부르기가 무색할 만큼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도 어렵지 않게 기념사진을 찍으며 완주할 수 있다.
중부지역에 설악산과 오대산이 있다면 남쪽에는 내장산이 있다.
전북 정읍시에서 11㎞ 떨어져 있는 내장산의 가을단풍은 전국에서 으뜸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전국의 관광버스들을 매년 가을 줄세운다.
산 안에 숨겨진 것들이 무궁무진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내장산은 신선봉을 주봉으로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 연지봉 등 9개의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특이한 산세를 갖고 있다.
보통 내장산 단풍 구경은 내장사 일주문부터 시작되며 단풍터널로 불리는 구간은 그야말로 산에 단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풍을 위해 산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곳은 또 우화정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넓은 눈으로 단풍이 드리워진 원경을 바라볼 수도 있어 더없이 좋은 단풍여형지로 꼽힌다.
이밖에도 빨갛게 물든 단풍이 조금 식상하다면 온통 노란색 잎으로 치장한 천년 은행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를 권한다.
수령 1100년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용문사 은행나무는 샛노란 은행잎들이 그림처럼 가을바람에 나부끼며 현실에는 없는 상상 속 세상같은 느낌을 준다.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뿌리를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천년 전 전설 속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