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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동구의 한 식당에서 배달일을 하던 김덕진(38·가명) 씨는 월급이 4개월째 밀리다 사채업자들의 등쌀에 못이긴 사장이 별안간 도망을 가는 바람에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장의 행방을 애타게 수소문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식당에 남은 집기마저 사채업자들에게 넘어가며 김 씨는 딱한 처지가 됐다. 모처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 얼마되지 않는 용돈이라도 부모님 손에 쥐어드리려 했던 노총각 김 씨의 소박한 꿈은 물거품이 됐다.
막막한 심정으로 구제를 받고자 대전지방노동체을 찾았다는 김 씨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보니 일자리 얻기도 쉽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답답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7월 셋째 아이를 출산한 오진희(36·가명) 씨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생계가 위협받자 몸을 푼지 채 두 달도 안돼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고만고만한 세 아이를 키울 생각에 걱정이 태산인 오 씨에게 전업주부로서의 평범한 삶은 사치가 돼 버렸다. 이번 추석이 달갑지 않은 명절이 된 오 씨는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는데 버는 것은 쥐꼬리만큼이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기에는 오늘 하루를 버티기가 너무 힘겹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경기불황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서민들에게 올 추석은 우울한 명절로 기억될 것 같다.
짧은 연휴에 신종플루 공포가 엄습하며 명절 분위기를 ‘다운’시키고 있는 가운데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물가와 폭등하는 전셋값에 소득 감소와 가계부채 증가, 고용사정 악화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커녕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일부 영세기업에선 풍성한 한가위가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박봉을 감수하며 일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 실업급여 수급자 대열에 동참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의 쓸쓸한 뒷모습은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반영한다.
대전지방노동청에 따르면 올 들어 7개월간 충청권에서 신고된 임금체불 근로자는 1만 4100여 명, 체불액은 686억여 원에 달하고, 실업급여 수급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빈곤층이 양산되고 있다.
대전의 한 취업 알선업체 관계자는 “경기침체 여파로 길지 않은 추석 연휴기간에 귀향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겠다는 구직자가 줄을 잇고 있다”며 “향후 생활형편에 대한 불안감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소비촉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 일 기자 oria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