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64주년 기념 ‘태극기와 함께하는 나라사랑 운동'이 13일 서대전시민광장에서 열려 핸드 페인팅으로 만들어진 37.5m×25m의 초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민 3000여 명이 중구청까지 광복기념 시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나라를 위한 마음이 예전하고는 달라.”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개인 이기주의에 빠져 있어 나라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

충남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는 독립투사 2명 중 한 명인 이일남(84·금산) 옹의 첫 마디이다.

이 옹은 지난 192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교사의 꿈을 갖고 지난 1942년 전주 사범학교에 입학했고, 재학 중 일본의 민족차별 교육에 분개해 비밀결사조직인 ‘우리회’를 결성했다.

오직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뭉친 ‘우리회’는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강령를 표방했다.

강령은 △우리는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 △우리는 어머니를 잊자 △우리는 하나의 무명용사가 되자 △학업 중이라도 선발대가 돼 만주로 이동해 민족운동을 하자 △우리 뜻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졸업 후 함경도 또는 평안도로 이주해 만주의 독립운동가와 연대하자 등이 주를 이뤘다.

이 옹은 “그 당시 지식인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 같은 마음을 가졌다”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다음 세대에 물려 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뜻이 맞은 동료 16명과 비밀결사를 조직했다”고 술회했다.

이 옹과 동료들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식사와 일을 하면서 1대 1 면담을 통해 ‘독립’ 의지 함양을 위한 계몽운동을 펼쳤다.

특히 한 동료의 하숙집을 본거지로 삼아 밤 늦은 시간 암암리에 농촌계몽 운동과 함께 독립정신 고취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활동하다 ‘우리회’는 독립의 근거지 마련을 위해 만주와 중국 길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일제시대 항일운동가 이일남 옹이 광복절을 맞아 13일 금산군 금산읍 자택에서 정부문서에 보관돼 있는 재판기록을 들어보이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우리회’의 정보가 일본경찰에 퍼져 더 이상 국내활동이 힘들어진 데다 해외 독립군의 자금 조달과 독립 근거지 마련 지원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이 옹은 만주에서 위장취업을 통해 동포들과 동거동락을 하면서 독립자금 마련과 해방의 중요성을 전파했다.

이 옹은 “일본 감시가 심해지자 서신, 전화는 꿈도 못 꿨다”며 “야밤을 이용해 독립군과 접선하고, 만주지역 동포들을 만나 독립자금과 계몽운동을 펼쳤다. 낮에는 막노동 현장에서 피곤함을 떨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독립자금이 부족하자 이 옹은 부유했던 집안의 조력을 얻어내고 국내 지식인들의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국내에 잠입해 고향인 충남 금산에서 위장취업을 하고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전주사범 시절 같이 활동했던 동료가 일본경찰에 붙잡히면서 소재가 발각돼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게 됐고, 매일같이 물 고문과 전기 고문 등으로 갖은 고초를 감내해야 했다.

늦은 밤에는 일본헌병이 교도소 내로 들어와 밤새 발길질하며 이 옹을 괴롭했다.

“고문이 끝나면 몽둥이가 날아오고, 그만두는가 하면 군홧발이 여지 없이 몸을 두들겼지. 지금도 꿈에서 그 당시의 고문이 나타날 때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이 옹은 몸서리치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옹은 그 때의 고문으로 잘 들을 수도 없지만 조금 큰 소리가 나면 지금도 몸을 떤다.

이 옹은 “고문이 너무 심해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갖은 고초 후에는 헌병대의 칼 끝이 목과 같이 있었다”고 회고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이 옹은 일본 헌병대에 붙잡힌 지 7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현재도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을 못한다.

이 옹은 “정말 나라 잃은 설움이 무언지 아나”하며 되물으며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 나라에 이제는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또 인터뷰를 끝내며 “뿔뿔이, 제각각의 생각을 떨쳐 버리고 하나로 뭉쳐 나라 발전을 이룩하고, 하루 빨리 남북 통일을 실현해 우리나라의 진정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옹은 독립 유공자로서 정부로부터 지난 90년과 86년 애족장과 대통령 표창을 수훈했다.

최장준 기자 thispro@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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