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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의 넉넉함 속에 펼쳐진 백제의 왕도, 부여는 고유한 백제문화와 여유로운 자연환경, 그리고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1400년 전 대백제와 마주하고 가족과의 여유로운 소통을 위해, 주말 백제역사문화 탐방을 떠나보자.
부여 길목에 들어서면서 차창 밖으로 눈길을 주면 어김없이 야트막한 산들과 적당히 펼쳐진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여름의 단골손님 매미소리와 함께 자연풍광이 주는 한 없는 한가로움은 차라리 평화스럽다. 서기 538년. 백제 26대 성왕은 이 기운을 보고 백제의 중흥과 더 큰 번영을 위해 부여로 수도를 옮겼으리라 짐작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강 위례성(서울)에 터를 잡은 후, 웅진(공주)을 거쳐 사비(부여)에 이르러 가장 독자적이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세 번째 왕도 부여에서 123년간(538~660)의 선진문화를 중국,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동아시아를 주도하는 해상강국으로 성장했다.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라는 백제문화의 진수를 맘껏 느낄 수있다. 부여에서 1박 2일 동안 잃어버린 백제문화의 흔적과 보물찾기는 소중한 시간과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백제의 왕궁과 백제 도성으로 이용되던 부소산성, 삼천궁녀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낙화암,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1400년을 꿋꿋이 지켜온 정림사지 오층석탑,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과 백제 무왕인 서동의 탄생 설화가 전해오는 궁남지, 서동공원, 백제 왕족의 무덤인 백제왕릉원, 국립부여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부여 곤충나라 체험, 백제역사재현단지 등을 둘러볼수도 있다.
◆부여의 진산, 부여의 중심 부소산
숙소에 짐을 풀고 부여시내로 나선다. 부여는 도시자체가 아담한 데다 시내에 유적지가 집중되어 있어 도보, 자전거 여행을 쉽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부소산성 주차장 내에 있는 종합관광안내소를 들르니 1박 2일에 알맞은 여정을 소개해준다. 가장 먼저 부소산으로 첫발을 옮겼다. 부소산성의 산책로 길 숲 내음이 싱그러움과 상큼함으로 다가온다. 백제의 마지막 도성 부소산에는 왕궁이 있었고, 사찰이 있었다. 또한, 해를 맞고 달을 보내던 누각과 군대가 머물렀던 산성이 있었다.
‘백제인의 충절과 혼이 서렸다’는 흔한 표현으로 부소산을 아우르기엔 슬픈역사의 무게와 가치는 너무나 육중하다.
부소산 곳곳에 꽃처럼 떨어진 낙화암 여인들의 절개와 백제 삼충신의 의로움과 백제왕실의 풍류를 여전히 안은 채 변함없이 그곳에 서있다.
부여군 북쪽에 위치한 부여의 진산 부소산(106m)은 흙을 다져 만든 나지막한 토성이다. 곳곳마다 백제의 역사와 왕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부소산성 내의 수많은 경승지를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 깃들인 옛 백제의 모습을 대할 수 있다.
부소산의 산책로는 매표소를 지나 성충과 흥수, 계백 삼충신을 모신 삼충사로 시작된다.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정상 부근 영일루의 신록과 군창지를 지나 백제 흥망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낙화암 백화정에서 휘돌아 흐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면, 유람선 선착장과 관광객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바로 이 자리에서 꽃잎처럼 떨어졌을 삼천궁녀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아이러니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 그 유명한 고란약수도 맛볼 수 있다.
◆절개의 산실 낙화암, 역사가 흐르는 백마강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660년 백제가 무너지던 날 3000명의 백제여인들이 충절과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이라 한다. 절벽은 아직도 붉은데 당시 백제여인들의 흘린 피로 물들었다고 전한다
낙화암의 애절한 사연을 뒤로하고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절벽 언덕에 절이 나타난다. 낙화암 절벽에 자라는 고란초에서 유래해 고란사로 불리지만 삼천궁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절 뒤편에는 찾아온 방문객이 목마름을 해결하는 자비의 약수 고란 약수가 유명하며, 한 잔에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과 백제 임금이 매일아침 이 약수를 마시고 왕성한 건강을 유지하였는데, 고란초 잎사귀를 약수 물에 띄워 오도록하여 약수임을 확인하였다 한다.
약수물에 목을 축이고 돌아 나오면 역사의 강 백마강이 맞아준다.
백마강은 주변국인 중국·일본과 중요한 교역로 역할을 하였던 역사가 흐르는 강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국토의 젖줄인 4대강의 하나로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 하여 지어진 이름 금강은 비로소 부여에 이르러 백마강으로 불린다.
나라의 재상을 등용할 때, 하늘의 뜻을 물어 임명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천정대로부터 약 16㎞의 구간이다.
낙화암 바로 위쪽으로는 강물위에 작은 바위가 솟아 있는데 당나라 소정방이 백마강의 용을 낚아 올린 바위 조룡대라고 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마강을 따라 올라오는데 갑자기 강물이 요동치며 사나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이것이 백마강에 사는 용이 조화를 부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삼아 이 곳에서 용을 낚았다는 설화가 전해오며, 조룡대 바위에는 움푹 패인 소정방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이제, 당시의 뱃길과 역사를 상상하며 황포돛배에 몸을 싣고 백마강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면 우리는 어느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부여 흥망의 증인, 정림사지(5층석탑, 박물관)
부소산 고란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구드래나루터에서 내리면 부소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온 것이다. 이제 구드래 관광지, 조각공원을 지나 다시 부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정림사지 5층석탑 앞에 마주서 보자.
전형적인 백제 가람(사찰) 배치인 남북 일직선상의 1탑 1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조성된 인공연못과 백제인의 세련된 기술과 장중하고 경쾌한 조형미를 엿볼 수 있는 한국최초의 석탑인 5층석탑이 1400여 년을 홀로 지키고 있다. 목조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첫 양식으로써 비례와 구조수법이 뛰어나며,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문화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람의 간결함과 개방감, 그리고 정숙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또한 백제 사비시대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불교문화와 사상, 기술 등을 체계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물과 모형으로 구성해 놓은 박물관도 빼 놓아서는 안 될 장소이다.
◆서동과 선화의 사랑, 연꽃의 향연 서동공원(궁남지)
백제의 유적지마다 전설과 역사이야기가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부소산 왕궁에서 남쪽 주작대로 중심부의 정림사지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 궁남지가 있다.
한 여인이 한적한 궁남지 연못가를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물길이 솟으며 용이 나타나 여인을 휘감은 후 그 여인은 산기를 느꼈으며, 이후 태어난 사람이 백제 무왕 서동이라는 탄생설화가 전해온다. 삼국사기에는 "무왕 35년(634년) 왕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어 한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역사적 사실을 더해주고 있다.
궁남지는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애틋한 사랑을 이룬 장소로도 유명하여 지금은 가족과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로도 애용된다. 특히, 12만 평의 연못주위에 핀 1000만 송이 연꽃이 뿜어내는 연꽃 향과 서동 선화공주의 사랑, 청정의 자연생태를 주제로 개최되는 국가지정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가 여름휴가 성수기철인 매년 7월 방문객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저녁이면 버드나무 가지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연못 가운데로 이어지는 다리, 포룡정 정자의 조명으로 연못에 비추어진 모습은 한폭의 그림 속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저녁만찬으로 포만감이 들 때, 다시 찾은 궁남지의 저녁산보는 왕의 품격을 느끼게 해준다.
부여=양근용 기자 yong2004@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