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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36) 씨는 지난 1998년 7년간의 연애끝에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후 1년 만에 딸 수정(가명)이가 태어났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미래에 꿈을 키워가던 세 가족에게 2001년 불행이 닥쳐왔다.
식당에서 잠을 자던 남편에게 화마가 덮쳤다. 남편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1년간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날아가 버렸고 시댁의 도움을 받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남편은 1년간 투병했지만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김 씨는 남편의 사망 이후 실의에 빠졌고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수정이를 볼 때마다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어쨌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일자리를 찾았다.
처음 찾은 일은 화장품 영업사원. 한 달간 열심히 일했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30여만 원 안팎이었다. 수정이를 키우며 일을 한 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화장품 영업일을 그만 둔 김 씨는 청주지역자활센터의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자활지원사업인 집들이 사업단에 들어갔다.
비로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해본 도배일이 고됐지만 적성에도 맞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일을 해 돈을 벌고 딸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2년간 집들이 사업단에서 경험을 쌓은 김 씨는 2004년 사업단 동료들과 함께 하나건축이라는 공동체사업단으로 독립하게 된다. 하나건축은 청주지역의 공동체사업단 1호이다. 공동체사업단의 독립과 함께 김 씨는 공동명의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사업체를 갖게 됐다.
그리고 남편의 투병생활 때부터 시작된 기초생활수급자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자활공동체 사업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수급비보다 그리 많지 않은 수입, 서로 어려운 사람끼리 모이다 보니 갈등도 많았다. 결국 8명이 시작한 사업은 3명만 남게 됐지만 그만큼 자립에 대한 의지가 강한 구성원들로 인해 사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
김 씨는 “일을 시작하면서 수급비용보다 그리 많지 않은 돈을 벌기 위해 왜 고생을 사서 할까 하는 후회도 있었다”며 “무엇보다 딸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어 “아직 고객관리나 영업활동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힘들긴 하지만 자립하려는 의지만 가져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하나건축을 전국 집수리공동체 중 최고의 자활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형식 기자 letsgoh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