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9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 최영근(한남대 미술대학 교수) 작가가 본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
무려 19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최영근(한남대 미술대학 교수) 작가의 말이다.
그의 작품은 눈 깜짝할 사이 찍어 내는 공산품과는 아주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찰나(刹那)의 감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시간을 기록하듯 오랜 공을 들여 작품을 만는다. 예술에서조차 느림의 가치가 의미를 잃고 있는 시대 속에 그는 '느림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를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11일은 그와의 만남이 약속된 날. 오전 10시경 그는 캐주얼 복 차림으로 자신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안갤러리(전시기간 1일부터 14일까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장을 먼저 꼼꼼하게 둘러본 그는 "오랜만의 인터뷰이고 중요한 지면을 할애해준 만큼 혹 빠진 것 없는지 챙겨가며 이야기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해 왔으면서도 왜 19년 만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작품은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 시도 잊지 않고 작품이 나갈 길을 생각하면서 작업해 왔음에도 19년이란 시간이 그야말로 덧없이 흘러갔다. 백제금동대향로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답했다.
다음은 한 시간 남짓 나눈 속 깊은 대화를 정리한 일부이다.
-19년 만에 여는 개인전입니다.
"만약에 19년 뒤 개인전을 열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한 시도 잊지 않고 작품이 나갈 길을 생각하며 작업했고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간 것뿐이다."
-이번 전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서울에서 전시가 이뤄졌다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서울에서 전시를 했다면 파급효과나 이해의 정도가 넓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전을 중심으로 작품 및 교육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는 게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
-198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공예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전에 온지 4년째 되던 해였는데 그 시대 유행했던 재료, 작품의 경향 쫒아가다가 시대의 흐름이 나와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내 방식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영채기법(목재를 염색하는 기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모두가 놀랐었는데 계속해서 유행만을 쫒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작업을 끈기 있게 해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오랫동안 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미술가 입장에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서울에서 활동하면 한국미술사에 끼어 있는 것이고 지역에 있으면 약간 비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전에서 활동하지만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작품에 있서 장소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전통의 칠 예술을 통해 새로운 조형세계를 열어보겠다는 꿈도 이 같은 작업을 계속 끌고 올 수 있었던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딱 떠오르지 않습니다. 친하다면 다 친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 건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특별히 가는 곳도 없고 학교에는 365일 나가니까.”
-평소 인기가 없다는 말인가요.
“뭐 그럴 수도 있죠.(웃음) 작품구상에 쫓겨서 여유 없이 살았으니까. 친구들은 가족 여행도 가고 하는데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노는 것도 중요하고 오랫동안 공력이 드는 일인데 그쪽에 대한 노하우를 깨우치지 못했다. 만일 나에게 많은 돈을 주고 하루 안에 다 쓰고 오라고 하거나 여름 내내 놀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철학자는 이런 상황을 빗대 '이러다가 결국 후회하지, 이렇게 될 게 틀림없다'고 말했는데 내게 딱 맞는 말이 돼 버렸다. 다람쥐 쳇 바퀴 돌듯 흘러간 시간이 아쉽다.”
-작품이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나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사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삶이려니 생각하고 견뎌왔다. 이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전통문화, 전통공예 등 지역 문화의 발전을 꿈꾸게 된다. 정치인이나 행정관료 역시 지역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지역문화의 발전은 예술인들만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정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문화발전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중요하다는 말이나 이벤트, 쇼가 아닌 진정성을 갖고 문화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면 국민정신, 시민정신도 가다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 했던 순간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살면서 후회를 한다. 후회와 함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각을 뒤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 수많은 후회를 했다. 남들은 작업을 하면서 심취하고 즐겁게 한다고들 하는데 작품을 볼 때 마다 부족함이 눈에 들어왔고 늘 후회와 좌절을 해야 했다. 그렇게 풀이 죽어 집에 들어갔다 아침이면 '그래도 다시 해야지'라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작업에 임했다. 그렇게 19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됐을까요.
“주변에서 두 가지 얘기를 한다. 의사가 됐으면 치료를 잘했을 것이고 법률가가 됐어도 잘했을 것이라고. 내 의사와는 무관한 판단이지만 어려움을 타계하는 방법을 집요하게 찾아준다는 측면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10년 뒤에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예측이 안 된다. 작품 발표한 것을 알리고 이 작업방법을 심화시키는 법을 여전히 고민할 것 같다. 또 작가가 한 가지 형식과 방법에만 매달릴 수 없으니까 또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후배 작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각자 처한 입장이 달라서 한 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전이라는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지역적 한계에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겠다고 자신을 자꾸 채찍질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잘 되지만은 않겠지만 스스로 지역적 한계를 넘으려고 해야 한다. 부탁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작품을 할 때 뭐든 빨리 하려고 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작업에 임해보라는 것이다. 작품을 많이 만들고 전시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성찰과 무르익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시대적 흐름이나 유행만을 쫒지 말고 자기의 색깔을 작품에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작품을 내놨고 대전에서 첫 전시 했으니까 이제 장소를 달리해 전시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작업들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할 지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평가받는 것이 작가의 운명 아닌가.”
그는 이야기 말미에 백제금동대향로 얘기를 꺼냈다.
백제를 대표할 문화가 없다고들 할 때 금동대향로가 출토되면서 그 간의 모든 오해를 불식시켰듯 대전에서도 이제 하나씩 솟아나올 때가 됐다고 했다. 미술만이 아닌, 모든 예술장르에서 걸출한 작품이 나올 때 비로소 도시의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떨리는 음성엔 대전에 대한 애착이 가득 실려 있어 보였다.
글=김항룡 기자 prime@cctoday.co.kr
사진=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