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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4월 13일자 1면 보도>일제 강점기 당시 건립된 명문고들의 무감각한 일제역사 계승과 미청산된 교육계 내 일제잔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공주여고 80년사(史)’에 따르면 공주여고에 부임한 일본인 교장들은 황국신민화, 내선일체, 신사참배 등을 강요하며 민족정신 말살에 앞장섰다.
지난 1928년 공주공립여학교로 개교한 공주여고는 1931년 1회 졸업생부터 45년 광복 때까지 일본인 611명, 한국인 19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공주여고 80년사는 일제의 경우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식민 통치에 순응하며 천황에 충성하는 인간육성을 궁극적인 교육목표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례로 주당 수업시수를 보면 일본어가 7시간 정도, 일본 역사가 3시간 정도였으나 조선어(한글)는 한문을 포함해 1~2시간, 조선사는 1시간도 없었다. 또 학교에서는 ‘우리는 황국신민이다’라는 문장을 강제로 외우게 했고, 창씨 개명과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등 천황에게 맹종하게 하는 황국신민화 교육을 주입했다. 상벌 규정에도 민족정신 말살과 내선일체 정책은 그대로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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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는 내선 일체(內鮮一體)라는 표어를 앞세우고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획책했다.(왼쪽) 공주여고 학생들이 1942년 황대신궁 앞에서 참배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공주여고 80년사 |
장기순(13회 졸업) 씨는 일본인 교장 ‘영치수혜치(永治壽惠治)’ 씨를 회고하며 학교강당의 정면에 일본 고대 인물인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조례를 하며 숭상토록 하는가 하면 학교 뒷산에 있던 일본신사를 참배토록 강요했다고 전했다. 또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재직한 ‘복전풍길(福田豊吉)’ 교장은 학생들에게 전시준비를 위해 주·야간 행군까지 실시했다.
이와 함께 본보의 ‘대전고 홈페이지의 일본인 교장 게재’ 보도 후 격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본보 홈페이지에 “동문이 민족감정보다 더 중요한가”라며 지적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유구무언’이란 제목에서 “대수럽지 않게 생각하는 무감각한 역사의식이 더 큰 문제가 아니냐”며 현 사회의 세태를 꼬집었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겠느냐”며 “아픈 추억도 추억이듯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교육계의 논란도 뜨겁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원로는 “일본인 교장들이 당시 어떤 행태를 했을까를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청산 또는 반성 없이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금홍섭 대전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반성에 기초한 역사라면 문제가 아니나 대전고의 경우 반성에 기초한 기술이 아니다란 점에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과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며 “학생들 입장에서도 치욕스런 부분인 점을 고려할 때 학교당국에서 사과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 처장은 이어 “미청산 시 혼란을 더욱 키운다”며 현 세대내 일제잔재 청산 필요성을 피력했다.
서이석 기자 abc@cctoday.co.kr
진창현 기자 jch801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