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을 때 우산 빌려주고, 비오면 우산을 가져간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더군요.”

대전에서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경기불황에도 아랑곳 없이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 주력해 왔지만 최근 들어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금난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K 씨는 “매출이 줄은 것도 아니고, 은행이자도 밀리지 않았는데 주거래 은행에서 지난해 재무제표가 나빠졌다는 이유로 회사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신규 대출이 불가능해 졌다”며 갑작스레 돈줄이 막힌 데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신기술을 인정받아 외국업체로부터 샘플 제품을 보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지만 신규 대출이 어려워 생산을 하지 못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다”고 하소연 했다.

충남에서 섬유제조업체를 경영하는 B 씨는 "최근 시중은행에 유동성 지원을 신청했더니 은행 담당자가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며 부동산을 추가 담보로 설정하고, 매월 수백만 원을 붓는 정기적금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며 "신제품 출시와 함께 시장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데도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돼 회사가 흑자도산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권의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가 ‘기술력’이나 ‘미래 성장성’보다 ‘재무건전성’에 무게를 둬 중소기업 자금난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충청권을 비롯한 전국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이 ‘기술력 및 미래수익 창출력에 대한 금융권 신용평가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이같이 느끼는 이유로 ‘금융권의 기술가치평가 모형 부재'(76.5%)를 가장 많이 꼽았고, '특허권 등 기술력 관련자료 불인정'(16.1%), '기술심사인력 부족'(5.9%) 등이 뒤를 이었다.

또 기업대출심사와 관련된 문제점으로 ‘재무제표 위주의 평가'(41.3%), '담보위주 평가'(38.3%), '과다 보증 요구'(10.4%) 등을 지적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유망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해 경영 애로를 겪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신용평가시 기술력을 비롯해 특허권, 브랜드 등의 무형자산과 미래수익 창출력 반영비율을 확대하는 정책대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일 기자 oria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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