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김태균이 이승엽에게 대한민국 4번타자를 물려받을 당시엔 우려도 많았다.
이승엽이라는 국민타자의 공백을 김태균이 과연 메울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이승엽보다 ‘한 수 위’ 였다.
그는 ‘포스트 이승엽’이라는 여론에 대해 “저는 한 번 잘했을 뿐이지만 승엽이 형은 꾸준히 잘했다”며 비교를 겸연쩍어 했다.
김태균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가공할 타격감의 비결을 ‘연습’이라고 꼽았다. 거포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하와이 전지훈련 땐 체력훈련과 함께 손목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고 방망이 무게도 평소보다 무거운 1㎏으로 늘렸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의 활약을 두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인 것 같다. 컨디션도 좋았고 전지훈련 때 페이스를 잘 조절한 것 같다”고 평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는 대회였다. 준결승 베네수엘라전까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그였지만 마지막 일본과의 결승전 땐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특히 한일 결승전 2-3으로 지고 있던 9회말 타석에 섰을 땐 4번 타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볼넷을 얻어 걸어나가긴 했지만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결승전 선발로 나온 이와쿠마 히사시의 공은 정말 치기 어려웠어요. 일본 야구가 메이저리그 야구보다 훨씬 상대하기 까다롭더라구요.”
올해를 마지막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그의 시즌 후 행보에 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된 그가 미국이나 일본 등 야구강국으로 진출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니겠냐는 목소리가 언론 등을 통해 계속해서 흘러 나온다. 하지만 그에겐 시즌 후 행보보단 곧 시작될 한화이글스의 2009 시즌이 더욱 중요하다.
지난 시즌 개인적으론 홈런왕 등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쓸쓸한 가을을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직 FA나 해외진출에 대해 말하긴 이르다”는 그는 “우선 팀의 4번타자로서 열심히 제몫을 해서 팀을 4강에, 그리고 우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론 2년 연속 3할 이상 타율에 홈런왕을 차지하는 것도 목표다. 40홈런의 벽을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그는 이번 시즌엔 그 벽도 허문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면서 그의 사생활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베네수엘라전 때 친 홈런을 누나의 출산 선물로 바친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삼촌’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그의 지극한 조카사랑에 팬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김태균에게 그의 사생활을 물어봤다. 김태균은 ‘아쉽게도’ 현재 열애 중이라고 한다. 1년째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상대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의 연애사는 우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얼마 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이연희가 좋다는 얘기를 했다가 여자친구한테 혼났어요. 질투 아닌 질투를 하더라구요.”
그는 경기가 없는 시간엔 영화와 책을 즐겨 본다. 또 친구들을 만나면 가볍게 맥주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곤 한다. 여행을 좋아해 자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시간 내기가 수월찮다.
“생활이 일반사람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다만 운동선수다 보니깐 활동영역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는 한 것 같아요.”
김태균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별명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김태균의 별명은 무려 1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팬들은 그의 사소한 행동,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별명을 양산해 내고 있다. 김노출, 김벌렁, 김깜짝, 김메인, 김왕따, 김새침, 김꽈당, 김졸려, 김거북….
그래서 그의 대표 별명은 ‘김별명’이다. 그는 이러한 별명들에 대해 팬들의 관심표현의 하나란 생각으로 고맙게 여기기도 하지만 불만도 있다고 한다.
“전에 시합 중 주요 부위에 공을 맞아서 정말 너무 괴로웠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별명(김고자)을 짓고, 사진을 공유하면서 즐거워 하더라구요. 그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별명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나를 생각해주는 팬들이 그만큼 많은 것으로 알고 열심히 노력해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는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김핸섬(웃음). 이 별명이 좋다. 사실 지금은 예전보다 피부가 안 좋아 지긴했지만, 아무튼 이 별명이 가장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그는 ‘힘’이라고 소개했다. 어릴 적부터 힘이 유난히 좋아 아버지가 야구를 권유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태균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홈런타자로서의 기질을 보였다. 충남 천안북중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엔 그가 친 공이 운동장 담장 밖에 주차돼 있던 차들의 유리창을 깨기 일쑤였다고 한다.
야구가 아니면 어떤 길을 걸었을 것 같냐는 질문엔 “생각해 본 적 없다”며 그의 외길 야구인생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가족을 물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부모님이에요. 저희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죠.”
호탕하고 밝은 김태균의 야구인생은 이제 본격적인 괘도에 올랐다. 메이저리그에 가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소년은 이제 세계 4번타자로 우뚝서 메이저리그에서 탐내는 선수가 됐다. 잘하는 야구를 즐길 줄도 아는 그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대한민국 야구계의 밝은 역사가 엿보였다.
글=진창현 기자 jch8010@cctoday.co.kr
사진=전우용 기자 yongdsc@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