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한 대학 기숙사에서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된 일본인 A 씨는 재판과정에서 통역의 실수로 큰 곤욕을 치렀다.

“형사합의가 이뤄졌냐”는 판사의 질문에 A 씨는 “피해자가 과도한 합의금 요구로 합의를 못했고 대신 법원에 공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통역은 “합의하지 못했다”는 말만을 재판부에 전달, 중형이 내려질 상황에 직면했다. 다행히 일본어를 잘하는 지인이 재판에 참석, A 씨의 입장을 재판부에 다시 피력해 원활한 판결을 이끌어냈다.

#2 최근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캄보디아 여성 B 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캄보디아 통역을 구하지 못해 '캄보디아어를 사용할 줄 아는 베트남 여성'에게 통역서비스를 받았다.

이 사건은 농촌지역에서 벌어져 해당 경찰서는 캄보디아어 전문통역을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베트남 여성을 통역인으로 활용했다.

문제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외교적 관계는 예전부터 견원지간으로 베트남 여성은 B 씨에게 불리한 내용의 진술을 담당경찰에게 전했다.

대전·충청지역 외국인 증가와 함께 범죄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반면 법정통역, 피의자 조사 등 사법기관의 전문통역서비스는 상대적으로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법부를 중심으로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법정에서의 진술이 중요한 증거자료로 채택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는 '공인 법정통역사 제도'가 없어 관할 대학이나 대사관에서 추천한 통역인이 법정통역인으로 활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22일 법무부, 대법원, 경찰청, 대전지방법원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등록외국인 수는 모두 85만 4007명으로 이 가운데 대전의 경우 모두 1만 3786명의 외국인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 범죄도 매년 20~30%씩 늘면서 국내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 수도 지난 2004년 621명에서 3월 현재 1569명으로 5년 만에 152.7%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해 하반기 대전지법에 접수된 외국인 관련 형사 단독사건은 모두 44건으로 상반기 33건에 비해 33.3% 늘었으나 법정통역은 추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대전지법에서 시행하고 있는 통역인 선정 과정은 매년 말 대전소재 4개 종합대학의 추천을 받아 등록해 기본통역료로 7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대전지법에서 통역풀로 등록된 언어는 영어 3명, 일어 3명, 중국어 4명, 독일어 1명, 불어 1명, 스페인어 1명, 러시아어 1명, 수화 2명 등이며, 재판부에서 자체 해결이 어려운 사건은 법원행정처에 문의, 추천 통역인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 및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의 전문통역인 선정절차는 지역 내 각 대학의 추천만으로 진행돼 통역인의 능력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나 인권단체들은 "미국 등 선진국은 현지어에 능숙한 외국인 이주민이나 자국 통역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법정통역 전문교육을 한 뒤 공인자격증을 부여한다"며 "형사소송법상 한국 거주 외국인은 경찰조사나 법원 재판 시 전문통역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환 기자 pow1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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