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55년째 대전 동구 중동 47-4번지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회상사(回想社)는 전국에 보급된 족보 10권 중 8권 이상을 생산해낸 족보출판의 원조이자 족보문화의 산실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1954년 30대 초반의 사업가였던 박홍구(88) 옹에 의해 전국 최초의 족보 전문출판사로 창립된 회상사는 반세기가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뿌리도시’ 대전을 상징하는 문화코드이자 대전 원도심 인쇄출판문화의 전성기를 주도한 회상사 사옥에는 '전통문화 진흥, 차세대 육성의 전당'이란 글귀가 쓰여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왠지 모를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회상사가 문을 열고 족보와 문집, 고서 출판을 본격화한 것을 계기로 주변에 인쇄업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인쇄 골목' '인쇄 거리'가 조성됐다.

'사랑·이성·창조'를 사훈으로, '인간성·성장성·공정성'을 운영방침으로 삼고 있는 회상사는 조판, 인쇄, 제본 등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처리, 1일 2000권을 발행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췄다.

대전시민들에게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각인된 회상사는 자체적으로 고유 글자체를 개발, 박홍구 회장의 호인 춘전(春田)에서 딴 '춘전체'란 이름으로 1996년 특허등록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8년 사옥 내에 설치된 '회상문보원(回想文譜院)'은 국내 최초의 족보도서관으로 300여 년된 효령대군일자의성군보(孝寧大君一子誼城君譜)를 비롯해 4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전국 대학 도서관 중 최초로 2005년 8월 배재대학교에 설치된 족보·문집자료실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회상사는 세계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대전 중구 침산동 산 34번지)에 올해 말 들어설 족보박물관 건립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150명에 달했던 직원은 금속활자를 대신한 컴퓨터 조판시스템 도입 등 공정 현대화와 CD에 담는 전자족보 제작 증가 등의 영향으로 현재 4분의 1 수준인 35명으로 줄었다.

1980년 초반 활황을 누렸던 회상사는 1990년대 말부터 쇠락기에 접어들었지만 대한민국의 뿌리를 지킨다는 자긍심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

여성호주제 도입, 국제결혼 급증 등의 여파로 씨족 개념이 점차 희박해지며 족보의 중요성이 예전에 비해 크게 퇴색되고 경기불황으로 족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저하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회상사는 꿋꿋하게 족보 출판의 명맥을 잇고 있다.

전자족보와 함께 문중의 면면을 집대성한 디지털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불황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사 간의 끈끈한 협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전 동구청장을 역임하고 2년 전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회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병호(64) 대표는 "세태가 각박해지면서 자기의 핏줄을 찾으려는 의식이 크게 약화돼 안타깝다"며 "55년의 전통과 노하우에 전국 최대 규모, 최신 설비를 갖춘 회상사는 족보출판 원조로서의 위상을 지켜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창수(51) 공장장은 “시대가 급변하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수주 물량이 크게 줄어 어려움이 있지만 직원들 모두 민족문화 보존이란 고귀한 가치를 지닌 과업에 임한다는 자세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최 일 기자 oria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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