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 향토사학자가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최초로 밝혀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충남 천안중학교 사회과 신상구(58) 교사는 천안 출신 유림 포암 이백하(1899~1985년) 선생의 외아들 이은창 씨가 지난 1977년 7월 1일자로 작성해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항일독립투사 이백하 옹의 공적조서’를 연구하던 중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찾아냈다.

특히 신 교사는 조사연구를 통해 기미년(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가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3·1운동 독립선언서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이백하 선생이 구국동지회 명의로 자체 제작해 배포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항일독립투사 이백하 옹의 공적조서’에 따르면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는 최남선과 한용운이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너무 길어 이백하 선생이 그것을 참조해 직접 초안하고 미농괘지에 수일간 철야 복사해 배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1995년 천안문화원이 발간한 ‘천안독립운동사’와 1997년 천안시가 발간한 ‘천안시지’에 기록된 “아우내 장터에서 선언된 독립선언서는 유관순 열사가 3·1 만세운동 당시 파고다공원과 남대문 항일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은밀히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그대로 선언한 것”이라는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으로 향토사를 포함한 근대사 연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신 교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백하 선생이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유관순 열사의 숙부 유중무 선생이 자금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현재까지 기미년 만세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선언한 곳은 경남 함안과 하동 등 3~4곳에 불과해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아주 드문 사례로 지역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 교사는 “독립선언서 전문을 밝혀내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원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너무나 아쉽다. 하루빨리 찾아내 문화재로 지정하고 후대에 계승시켜야 한다”며 “청주시의 직지찾기 운동을 벤치마킹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천안시와 국가보훈처, 천안문화원, 독립기념관 등 관계기관들이 힘을 모아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찾기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전문>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민족의 대표 33인이 선봉이 되었으니 13도 2천만 민중은 뒤를 이어 때를 잃지 말고 궐기하라. 분투하라. 인도 정의의 두 주먹으로 잔인무도한 일본의 총칼을 부수라.정의의 칼날 앞에는 간악한 창과 방패가 굴복할 것이다. 하늘은 의로운 무리를 도울 것이며 귀신은 반드시 극악무도한 자를 멸할 것이니 동포여 염려할 것 없고 주저할 것 없이 오늘 정오를 기하여 병천시장에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모이라. 잃었던 국토를 다시 찾자. 기회를 놓지면 모든 복도 가느니 두 주먹을 힘차게 쥐고 화살같이 모이라. 반만년의 문화민족이 노예시 야만시 하는 일본의 굴욕을 감수할 것이랴. 기미년 4월 1일 구국동지회 대표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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