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만난 만학도 김용녀 할머니가 뒤늦게 배운 글 공부를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윤서 기자 |
“서른 아홉에 남편 잃고 삼형제 키우느라 공부는 꿈도 못 꿨는데 여든 넘어 이름 석 자, 동네 간판이라도 읽고 싶어 연필을 들었네요”
김용녀(81·대덕구 비래동) 할머니는 배움에 있어 ‘늦은’ 나이를 넘어 이미 ‘지난’ 나이로도 볼 수 있는 여든에 한글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팔·다리 장애판정을 받은 불편한 몸이지만 8개월 전 지인의 권유로 대전모두사랑장애인야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한을 가슴 속에 평생 묻고 살았던 김 할머니는 “오빠들이 내 교과서를 불 속에 다 태워버렸다”며 “철없던 시절 그 핑계 삼아 공부 안해도 된다는 마음에 마냥 좋아했다”고 칠십년도 더 넘은 과거를 회상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36년간 목욕탕 세신사로 일한 김 할머니는 그동안은 자식 키우느라 바빠서 배울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아들 셋 장가보내고 나니 그제야 생활 속 불편은 물론 삶의 회한이 몰려왔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노선도 볼 줄 몰라 버스 타기도 두려웠다”며 “그러던 중 동네 주민이 같이 한글을 배워보자고 손을 내밀어 용기를 냈다”고 답했다.
현재 대전모두사랑장애인야학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 80대는 김 할머니가 유일하다. 그때부터 김 할머니는 주 5일 하루 4시간 씩 자원봉사자들에게 한글 교육을 받았고,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우연한 기회로 참가한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때 늦은 공부’라는 김 할머니의 작품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상 수상작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자작시는 일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한글을 배우게 된 기쁨과 희망이 순차적으로 담겨 있다. 김 할머니는 내달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시상식을 앞두고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나이에 글을 읽고 쓰게 된 것 만으로도 기쁜데 이렇게 귀한 상까지 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며 “여든이 넘어가면 보통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지 않고 더 많이 배우고 펼치라는 의미로 감사히 받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야학에 다니는 손주 같은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쳐보는 것”이라며 “그 날이 올 수 있도록 건강관리와 한글 공부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