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硏, SFR 개발 예산 540여억서 300여억으로 삭감
▲ 원자력시설에 대한 시민불안 해소를 위해 방사능 조사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조사를 벌였다. 5일 대전 유성구 관평동 주민과 원자력안전시민검증단, 공무원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 주변지역에서 이모성 청주대 레이저광정보공학과 교수로부터 방사능 유출여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
반 세기 넘게 쌓아온 우리나라 원전(原電)기술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새 정부 탈(脫)원전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원전 관련 기술개발부터 연구, 수출까지 줄 타격을 입게될 전망이다.
국내 유일 원자력 종합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정부 탈 원전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내년도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사업 예산이 당초 원자력연이 요구했던 540여억원의 55% 수준인 300여억원으로 일단 미래부에서 대폭 깎인 것.
SFR은 핵연료를 재활용해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원자로다. 원자력연은 오는 2020년까지 SFR 설계를 마치고 인허가 신청을 예정했지만 정부가 올해까지로 설계작업도 중지시켜 사실상 사업이 전면 보류됐다. 그나마 현재 책정된 예산도 조건부로,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와 같이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에 따라 향방이 좌우된다.
배심원들이 부정적 의견을 내면 예산이 큰 폭으로 조정될 여지가 있는 것인데 사실상 정부가 주요 정책 결정을 또 한번 미룬 셈이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정부정책에 따라 해외에서 하고 있는 실험들도 하나씩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아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전 연구분야도 차질을 빚고 있어 원자력계 시름이 깊은 상태다. 원자력연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HANARO)는 이번주말 기점으로 멈춰진 지 3년째를 맞아 기술 퇴보 우려까지 안고 있다.
하나로는 4월말 내진보강을 마치고 재가동을 앞뒀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법적 마지막 절차인 누설률 시험을 급작스럽게 연기하면서 불발됐다. 재가동 일정이 지연되면서 하나로에서 생산하는 방사선 동위원소 공급 차질은 물론 앞서가는 세계 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김만원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하나로는 한국 기초과학의 얼굴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시설이었는데 공백기가 생기는 바람에 현재는 역전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벌써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키로 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는 등 탈원전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탈 원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게 신재생에너지 확대인데 자원도 없고 바람도 잘 안 부는 우리나라 특성 상 무리한 청사진이라는 비판이 높다.
탈 원전 정책이 장기화되면 자칫 산업 인프라 후퇴는 물론 원전 수출 차질, 또 자칫 애써 키워온 인재들도 타 국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 대부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공감하면서도 무조건 탈 원전이 아닌 국가에너지대계획을 만들기 위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원자력계 한 관계자는 “원자력을 무조건 악의 축으로 몰고가지 말고 공적을 인정해주면서 최소한의 기술명맥은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고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정책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논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시간을 갖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상태서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공론화 절차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