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비가 살얼음으로 변해 시민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녔던 지난 14일 오전 11시경 충북도청 앞 인도.
최창호 청주시 복지환경국장 등 공무원 5~6명이 저마다 삽을 들고 살얼음을 걷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도청 직원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청원군청 앞 인도 역시 청주시청 공무원들이 나서 치웠다. 공무원들 마저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집 앞 눈을 치우지 않는 씁쓸한 현장이었다.
청주시 내 집앞 눈치우기 조례의 유명무실론이 대두되면서 살아있는 시민의식만이 빙판길 시민안전의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자연재해대책법 제 27조 건축물관리자의 제설책임을 근간으로 하는 ‘청주시 건축물관리자등의 제설·제빙 책임 및 지원조례’ 일명 내집앞 눈치우기 조례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 차원으로 관련법에 처벌 조항을 넣는 법 개정 노력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한정된 공무원 인력에 단속과 처벌이 쉽지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관련법상 빙판길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건축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설봉사단 모집·담당구역 배정
이에 아치산과 용마산 사이에 자리잡아 유난히 비탈길이 많은 서울 광진구 중곡4동의 시민자율제설봉사단 운영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7월 이곳에 부임한 고재풍(54) 동장은 기존에 13개 직능단체로 구성된 방재단이 주먹구구식으로 제설작업을 벌이면서 효과를 보지 못하자 시민자율제설봉사단의 모집기한을 거쳐 220명을 구성해 각자 담당구역을 정해 주면서 일사불란하게 제설작업을 벌이고 있다.
비탈길이 많아 제설차량도 들어가기 힘든 골목길은 3㎝이상 눈이 오면 시민들이 각자 자신들이 맡은 담당구역을 눈이 쌓이기 무섭게 빗자루로 쓸어 내면서 넉가래질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깔끔한 도로가 됐다.
서울 중곡4동의 시민자율제설봉사단에는 고등학생 60명으로 구성된 학생봉사단도 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이들은 봉사점수도 받고 시민안전 지킴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이는 대원고와 대원외고 또한 비탈길에 자리하고 있어 학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착안됐다.
◆눈치우기는 커녕 제설모래 가져가
서울시는 내 집앞 눈치우기 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다. 반면에 충북도 12개 시·군에는 청주를 비롯해 제천, 음성, 증평, 보은 등 5곳이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고 나머지 자치단체도 검토중이다. 사실 청주시에도 1만여 명의 방재단이 꾸려져 있다. 하지만 직능단체 위주로 꾸려져 비상소집을 해도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한다.
시민의식 수준도 제각각이어서 청주의 한 전자대리점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눈을 깨끗이 치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대조를 보이기도 했다. 내 집앞 눈을 치우는 시민의식은 차치하더라도 일부 승합차량 운전자들은 고가의 염화칼슘이 섞여 있는 제설 모래주머니를 가져 가면서 꼭 필요할 때에 사용치 못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살아있는 시민의식 예산절감도
울릉도를 비롯한 해안선 도시들은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해수를 이용해 제설작업을 벌이면서 막대한 예산을 절약하고 있다. 청주시의 경우 내년도 제설용 염화칼슘(570t)과 소금(1067t), 모래(126㎥)를 구입하는 비용만 2억 500만 원에 이른다.
시민의식이 살아나 내 집앞 눈치우기가 활성화 될 경우 이 같은 제설용 염화칼슘등의 구입비용을 아낄 수 있어 시 재정운용에도 도움이 될것이란 분석이다. 고재풍 서울 중곡4동장은 “조례로 강제할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어 공무원과 시민사회단체가 나서 내 집앞 눈 치우기 등의 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제설장비를 적극 보급해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철수 기자 cskyung74@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