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2) 씨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을 협박해 시가 7억 원 상당의 주식과 2억 원에 가까운 돈을 뜯어내려 한 혐의로 지난 2009년 7월 체포됐다.
검찰은 절도 등 전과 14범인 A 씨에게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A 씨는 그대로 달아나 재판에 나오지 않았고 결국,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이처럼 불구속 재판이 확대되면서 실형 선고를 받은 피의자가 도주해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2006년부터 최근까지 실형이 확정됐는데도 즉각 집행하지 못한 대전·충남지역의 ‘자유형 미집행자’는 모두 620명이다.
2006년 45명에 불과하던 자유형 미집행자는 2007년 96명으로 두배가량 증가했고 2009년 108명, 2010년 97명, 지난해 88명, 올해 86명으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형 집행시효(범죄별)를 넘겨 아예 처벌이 불가능해진 피의자도 같은 기간 15명이나 된다.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내릴 수 있는 국가의 형벌권이 농락당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별개로 법정형이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되는 중한 범죄를 저지른 뒤 1년 이상 도망 중인 영구미제 사건 피의자도 전국적으로 이미 수백 명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불구속재판 확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힌다.
구속영장 기각률 자체가 높아지면서 예전 같으면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될 피의자의 상당수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 도망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대전지법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2005년 660건(12.6%)에서 2008년 857건(19.4%)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이 실형 선고를 하면서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것도 자유형 미집행자가 증가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풀이된다.
법정구속을 면한 피의자들이 선고 직후 종적을 감추더라도 검찰과 경찰은 이들이 항소나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뒤에나 검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형 집행시효를 대폭 연장하거나 아예 없애서 수십 년 후라도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해외 도주자의 경우에는 시효 진행을 정지시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법원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영장 기각률이 높아짐에 따라 검찰 수사의 어려움이 크고, 범죄피해 회복 지연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