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건양 선생의 아들 이석하(78)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10년 전 보훈청에서 마련해 준 집이 이 씨의 전 재산, 지난 2004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지팡이에 의존해 겨우 보행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씨는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반면 나 같은 독립유공자 후손은 보훈청에서 주는 보상금 95만 원이 생활비의 전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내달 1일로 민족사에 큰 변혁을 가져다 준 3·1절이 9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아직도 대전과 충남지역 내 독립유공자 및 후손들은 대부분 경제난을 호소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간 동안 친일행각을 일삼은 친일 인사들과 후손들은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현재 대전과 충남지역 내 생존한 독립유공자는 8명, 유가족을 합하면 모두 221명이다. 이 가운데 보훈청으로부터 생계곤란이나 생계유지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은 86명으로 38.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훈청으로부터 받는 보훈급여금은 등급별로 차이가 있지만 생계곤란으로 판정받은 10등급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의 경우 한 달 수입과 급여금 합계가 79만 3000원에 불과하다. 또 지역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9등급 유공자 및 유가족들도 97만 2000원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제국주의에 편입해 일제 강점기간 동안 친일 행각을 일삼은 인사들과 그 후손은 아직도 전국 곳곳에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고소득층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2년 7개월 동안 15차에 걸쳐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집중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모두 77명의 친일 행각을 밝혀냈다. 조사위는 이들과 후손 소유의 553만 7460㎡(940필지) 시가 1350억 원(여의도 면적의 70%) 상당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을 내렸다. 또 친일재산조사위는 2차에 걸쳐 6만 2901㎡(26필지) 공시지가 19억 원 상당의 친일재산에 대해 위원회 의결을 거쳐 친일재산 확인결정을 했다.
지역별 국가귀속으로 결정된 친일재산 현황은 대전이 2만 7752㎡(14필지), 충남 53만 1098㎡(150필지), 충북 50만 9263㎡(100필지) 등으로 서울과 경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1945년 8월 광복 후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공문서상에 일본식 이름으로 남아있는 토지가 10만 필지에 달했던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3년 전 폐암말기 판정을 받은 후 현재 치료를 포기한 독립운동가 오봉록 선생의 아들 오몽룡(85) 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친일파 후손들에게 똑같이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것에 원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박진환·천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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